나이 들어도 테니스 실력 ‘업’된다
미국 서부 사막에서 연일 ‘테니스 돌풍’이불고 있다. 올해 첫 마스터스 토너먼트인 캘리포니아 주 ‘인디언웰스'(Indian Wells) 대회에서 파란과 이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 시간 16일 오전 열린 페더러와 나달의 16강전에서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페더러가 싱겁게 나달에게 세트 스코어2-0으로 완승을 거뒀다. 바로 직전에 열린 노박 조코비치와 신세대의 선두주자 닉 키리오스경기에서도 세계 2위 조코비치가 0-2로 완패했다.
매년 3월 초중순 열리는 인디언 웰스 대회는 강한 계절풍으로 선수들이애를 먹는데, 올해는 평년에 비해 바람이 유난히 불지 않는 편이었다.헌데 상위권 선수들이 초반 줄줄이 짐을 싸고, 준결승 혹은 결승에서 맞붙어야 할만한 기량을가진 선수들이 16강전이나 그 이전에 맞붙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페더러와 나달은 올해 첫 그랜드 슬램 대회인 호주 오픈 결승에서 만나 페더러가 세트 스코어 3대2로 신승을 거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두 선수의 상대 전적에서는 이 경기 전 나달이 여전히 23승12패로 압도적 우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16일 페더러 나달 경기가 있기 전,전문가들은 어느 쪽이 이기든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데 페더러는 첫 세트 6-2, 두 번째 세트 6-3으로 한 시간 남짓에 걸쳐 손쉽게 나달을물리쳤다.
스카이 스포츠 채널의 영국인 해설자는 경기 중 “(만)35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발전하는 원핸드 백핸드 기술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스포츠 채널ESPN 분석가는 “그간 나달의 승리 원천이었던 (취약한) 페더러의 백핸드가 반대로 나달에 대한 공격 무기가 됐다”고 평했다. 나달 자신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페더러의 리턴에 답을 내놓을수 없었다”고 상대의 받아치기를 칭찬했다.
전문가들의 이 같은 분석은 30대 이상의 베테랑 프로선수들은 물론중장년 테니스 동호인들에게도 귀가 솔깃한 얘기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우리 나이로 37세인 결코 젊다할 수 없는 페더러가 여전히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그 것도 한물 간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 한 손 백핸드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경기력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국내 중장년 테니스 동호인들의 절대 다수는 한 손 백핸드를 구사하고 있다. 페더러백핸드 최근 기술적 진보의 핵심은 공을 반 박자 혹은 한 박자 빨리 잡아 치는 것이다. 왼손잡이 나달은역대 최강으로 평가되는 톱스핀으로 페더러의 한 손 백핸드를 크로스로 집중 공략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페더러는 베이스라인에 가까이 붙어 나달의 백핸드쪽 톱스핀 공을 빨리 잡아챔으로써 그 동안보다 최소 30센티 이상 지면에서 낮게 공이 뜬 상태에서 나달에게 리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페더러는 이와 함께 경기 후 수년 전 헤드 면적이 커진 라켓으로 바꾼 것이 백핸드를 빨리 강하게 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덧붙였다.
페더러는 기존에 사용해 오던 헤드 면적 약 580평방 센티미터 라켓을 2014년부터 포기하고, 632평방 센티미터의 라켓으로 바꾼 바 있다. 페더러는 “기존 라켓은 슬라이스와 포핸드 스트로크에서 강점이 있었으나, (현재 사용하는) 헤드 사이즈가 큰 라켓이 좀 더 쉽게 강한 파워를얻을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페더러는 8강전에서 조코비치를 꺾은 키리오스와 만나게 되는데, 이번 대회에서 가장 볼만한 경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키리오스는 20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다양성에서 페더러에 필적할정도로 노련하다. 또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하고 스핀이 많은 서브는 세계 최상급으로 평가된다. 다만 감정 조절에 약점이 있어 이따금씩 어이 없는 경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인디언 웰스 대회는 10여 년 넘게 랭킹 1~2위급 선수들이 우승한 대회로도 유명하다. 지금까지 조코비치가 5차례, 페더러가 4차례, 나달이 3차례 우승한 바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유일한 예외는 페더러의 현재 코치로 페더러보다 두 살 위인 이반 류비치치의 우승이었다.
1,2위인 머레이와 조코비치 대회 초중반 탈락한 현재 최상위 랭커는스탠 바브링카인데, 32강전까지 순항한 바브링카는 16강전에서 일본의 신예 요시히토 니시오카에게 패배할 위기까지 몰렸다가 가까스로 기사회생했다. 둘의 16강 전은 바브링카가 잘 못쳤다기 보다는 니시오카의 경기력이 빛난 한판이었다.
니시오카는 한국의 기대주 정현보다 한 살 위인 21세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세계 랭킹에서 정현보다 밑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 선전으로 단박에 60위권 안팎까지 랭킹이 수직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현은 92위로 하락세를 보이고있다.
동양인 선수로도 단신인 170센티미터의 니시오카는 테니스에서 유연성과좋은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예시하고 있다. 전신을 부드럽게 사용하는 탓에 키에 비해 강하고 스핀이많은 서비스와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정통 스타일과 다소 차이가 있는,즉 관절의 부드러운 이용이 적은 서비스와 스트로크 자세를 가진 정현으로서는 참고할만한 대목이다.
이 밖에도 올해 인디언 웰스 대회는 테니스 팬 혹은 동호인들이라면 쉬 잊기 힘든 여러 기록들을 양산하고 있다. 세계 랭킹 1위 앤디 머레이가 첫 경기에서 탈락한 것은 이번 대회의이변의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인디언 웰스 대회는 테니스 마스터스 대회 사상 가장 심하게 뒤틀린 대진표 편성으로 경기가 치러지기도 전에이런저런 말들을 낳았다. 32강까지 랭킹에 따라 시드가 배정된 가운데2위 조코비치가 자리한 쿼터에 강자들이 일방적으로 대거 몰리는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시드 1번의 머레이와 3번의바브링카가 대진표의 절반을 리드했다면, 2번 조코비치와 4번니시코리가 포진한 나머지 대진표 절반에는 페더러와 나달, 그리고 20세언저리 선수들 가운데 가장 랭킹도 높고 실력도 출중한 키리오스(16위)와 알렉산더 츠베레프(20위)까지 가세했다.
여기에 과거 페더러를 꺾고 유에스 오픈 우승컵을 가져갔던 후안 마틴 델 포트로도 조코비치 쿼터에 자리했다. 또 두어 해전 유에스 오픈을 우승한 경험이 있는 마린 칠리치도 조코비치 섹션에 배정됐다.
머레이 쪽 대진표 절반에 속한 선수들의 수집한 그랜드 슬램 우승컵은 머레이와 바브링카 각 3개로 모두 6개에 불과했다. 반면조코비치 섹션에는 페더러 18개, 나달 14개, 조코비치 12개, 델 포트로와 칠리치 각 1개로 모두 46개에 달했다.
마스터스 대회 사상 가장 한쪽으로 기울어진 대진표가 사막의 돌풍을 불러 온 주요인 가운데 하나임은 두말 할 필요없다. 아울러 테니스 사상 기량이 가장 출중한 스타들, 즉’빅4’로 불리는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머레이의 시대가 절정혹은 절정에서 막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신예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세대교체의 바람 또한 돌풍을 한층 거세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