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곧 10위” 페더러 말 근거 있나?

테니스 호주 오픈 준결승 진출로 큰 사랑을 받은 정현 선수가 지난달 28일 귀국했다. 언론 등의 정현 인터뷰가 이어지고 각종 화제,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인기가 과거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나 수영의 박태환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이다.

과연 정현의 인기, 나아가 한국 테니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있을까? 막 ‘잘 나가는’ 젊은 선수에 대해 속된 말로 고춧가루를 뿌리거나 재수 없으라고 품어보는 의문이 아니다. 테니스 팬들이나 보통 시민, 또 정현 선수에게 ‘몸에 좋은 쓴 약’이 될 수 있기에 짚어보자는 것이다.


앞줄 오른쪽에서 5번째가 정현과 동갑내기인 일본의 니시오카 선수. 그는 호주 오픈 직전 테니스 활성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일본의 한 동네를 방문 이틀간 아마추어들과 공을 쳤다. 앞줄 왼쪽에서 4번째는 재일 한국인 이성독 박사. ⓒ 김창엽

*최소 1년은 보장된 정현의 인기=프로선수의 인기는 성적 순위, 즉 랭킹과 직결된다. 세계 남자 테니스의 랭킹시스템은 아주 잘 정비돼 있고, 실력을 평가하는 척도로써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현의 랭킹이 호주 오픈 시작 전 세계 58위에서 준결승 진출 후 29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은 그의 인기가 수직 상승한 것과 정비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현의 현재 랭킹 포인트는 1472점이다. 호주 오픈과 같은 그랜드슬램 대회는 준결승진출자에게 720점을 부여한다. 호주 오픈 준결승에 나감으로써 점수를 2배 가까이 끌어올렸다는 얘기이다.

테니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720점은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 수치일 수 있다. 이해를 돕자면, 720점이란 점수는 세계프로테니스협회(ATP)가 주관하는 ATP 250 대회에서 3번 우승하는 것과 거의 맞먹는다. ATP 250 대회는 우승자에게 250점을 준다. ATP 250 대회는 1년에 모두 40차례 열린다.

정현 선수가 이번 호주 오픈에서 따낸 720점은 내년 호주 오픈이 열릴 때까지 유효하다. 현재 기량이나 나이로 볼 때 정현 선수는 오는 11월 ATP 대회 종료시점까지 랭킹 포인트를 차곡차곡 더 쌓아갈 확률이 매우 크다. 바꿔 말해 최소한 낮춰 잡아도 정현은 향후 1년 동안은 상위로 랭커로 머물 것이고, 인기 또한 지속될 수 있다.

정현이 세계 주목하는 테니스 선수로 1년간만 유효하기를 바라는 한국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다소 성급한 듯하지만,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같은 유명 선수의 랭킹 변화를 정현과 비교하는 것은 그 나름 의미가 적지 않다.

정현 선수가 세계 랭킹에서 단식 순위를 부여받은 것은 2012년 10월로, 967위였다. 이어 2013년 10월 500위권으로 상승한 뒤 약간 등락을 거듭하는데, 2015년 4월에는 88위로 처음으로 세계 100위권에 발을 내딛는다. 세계 랭킹에 등록된 2012년 10월을 기준으로 하면 2년 반 남짓에 100위권 안쪽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좀 못 걸려 이번 호주 오픈을 발판 삼아 30위권으로 도약했다.

정현과 슈퍼스타들의 랭킹 상승 추세 비교 ()은 순위

정현
1000위권
2012년 10월(967)
1997년 9월(803)
2001년 10월(990)
2003년 7월(489)

페더러
500위권
2013년 10월(500)
1998년 10월(396)
2002년 7월(489)
2004년 5월(338)

나달
100위권
2015년 4월(88)
1999년 9월(95)
2003년 4월(96)
2005년 7월(94)

조코비치
30위권
2018년 1월(29)
2000년 10월(30)
2005년 3월(30)
2006년 7월(28)

페더러의 경우를 보자. 97년 9월(803위) 98년 10월(396위), 99년 9월(95위) 2000년 10월(30위)를 기록했다. 1000위에서 500위 안쪽으로 진입하는데 1년 남짓, 다시 100위권 이내로 들어오는데 1년 조금 못 걸렸으며 30위권 이내까지 도약하는데 1년가량 소요됐다. 전반적으로 정현보다 가파르게 랭킹이 상승했는데 100위권 이내까지는 비슷하지만 30위권으로 뛰어오르는 데는 정현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이 걸렸다.

나달은 2001년 10월(990위), 2002년 7월(489위), 2003년 4월(96위), 2005년 3월(30위)의 추이를 보였다. 1000위, 500위, 100위권까지 진입속도는 페더러보다 빨랐지만 다시 30위 안쪽으로 드는 데는 페더러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조코비치는 2003년 7월(767위), 2004년 5월(338위), 2005년 7월(94위), 2006년 7월(28위)로 세계 100위권까지 올라가는 데는 나달과 함께 가장 빠른 축이었고, 다시 30위까지 진입하는데도 불과 1년으로 페더러만큼이나 상승세가 가팔랐다.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스포츠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정현은 살아있는 테니스의 역사라 불리는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에는 다소 못 미치는 랭킹 상승 속도를 보이고 있다. 페더러와 나달, 조코비치와는 세대가 다르므로 정현의 경쟁 조건 또한 달라서 그대로 비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페더러가 인정했듯, 랭킹 상승 추이만 따지면 “세계 10위권 진입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정현 돌풍과 인기는 산술적으로는 내년 이맘때까지 1년 정도만 보장할 수 있지만, 테니스 선수의 전성기를 감안하면 향후 거의 10년 가까이 지속될 수도 있다. 통계가 말하는 테니스 선수의 전성기는 만 28~29세 즈음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테니스 인기 얼마나 지속될까=스포츠의 저변이 넓고, 선수층이 두꺼울수록 스타 선수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건 불 보듯 뻔 한 이치이다. 박세리가 촉발시킨 여자 골프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연아의 피겨는 골프에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박태환의 수영은 골프나 피겨와 견줄만한 인기를 얻거나, 저변을 확대하는 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정현이 몰고 온 테니스에 대한 관심은 어떨까? 크게 부족하지 않은 테니스 코트의 숫자와 줄고 있기는 하지만 전국 대회 등이 활발하게 열리는 동호인 테니스 환경을 감안하면, 테니스의 인프라는 골프나 피겨 수영 등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정현의 호주 오픈 준결승 진출은 생활체육으로써 테니스와 엘리트 프로 스포츠로써 테니스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순수한 동양인으로서 테니스의 역사를 다시 쓴 케이 니시코리를 배출한 일본의 예는 한국 테니스가 주목할 만하다.

일본 츠쿠바에 살고 있는 평범한 한 한국인이 전하는 일본 테니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보과학 박사로 재일 한국인인 이성독씨(56)는 30년 가까이 테니스를 즐겨온 애호가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사나흘 전 필자에게 사진 몇 컷을 보내오면서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요시히토 니시오카라는 일본 프로 테니스 선수가 랠리를 대략 30개쯤 쳐주었고, 서브도 몇 개 받아보았다”는 것이었다.

니시오카는 키가 1m70cm로 테니스선수치고 단신이라는 약점 외에는 니시코리의 뒤를 이을만한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다. 정현과 동갑내기인데, 이번 호주 오픈에서 2라운드에 진출한 뒤 탈락했다. 세계 58위까지 오른 적도 있고, 앞날이 기대되는 선수이다.

호주 오픈이 시작되기 전 이씨가 다니는 테니스 아카데미를 방문한 그는 격의 없이 다른 2명의 프로선수들과 함께 동호인 등을 상대로 테니스를 이틀 동안 ‘쳐줬다’는 것이다. 하루는 유소년, 다른 하루는 성인 등이 중심이었다. 4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테니스 채를 잡은 그는 또래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결국 프로로 전향한 전형적인 케이스이다. 테니스 선수를 아버지로 둔 정현보다 2살이나 빨리 라켓을 쥐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 아빠 혹은 형제자매와 함께 어린 나이에 생활체육으로써 테니스를 접하고 그중 소질이 있는 경우 프로로 변신하는 건, 서구나 일본이 테니스 선수를 배출하는 전형적인 통로이다. 한국은 이런 점에서 서구나 일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방과 후나 주말 즐거움과 건강을 위해 테니스 코트에 나오는 어린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 현실과는 딴판인 것이다.

정현 선수가 테니스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면, 이 불씨를 살려 나가고 키우는 것은 팬과 시민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재삼 강조하거니와 정현 선수가 젊고 성실한 등 미래가 기대되는 만큼 다행히도 시민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적지 않다. 건강도 증진하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큰 비용 지출 없이 즐길 수 있는 테니스의 장점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개개인들의 웰빙 수준을 끌어올리기에 이만한 운동도 기실 많지 않은 것이다. 한국이라는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페더러의 과학을 알면 테니스가 보인다

정현 선수의 선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눈길을 끌었던 2018 호주 오픈이 지난 28일 페더러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페더러는 여간해서는 깨기 힘든 그랜드 슬램 20회 우승이라는 문자 그대로 금자탑을 쌓았다.

페더러의 이번 대회 우승은 그의 남다른 운동 신경이나, 대진운 등의 덕만을 본 게 아니다. 장비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운동이 그렇지만, 테니스는 과학과 기술의 지배를 받는 대표적 스포츠이다.

페더러를 테니스 역사상 빼어난 여러 선수들 가운데 그저 하나로 봐서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페더러의 테니스 과학은 여타의 톱 플레이어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가 한둘이 아닌 까닭이다. 아마추어 테니스 동호인들은 물론 선수들까지도 눈 여겨 봐야 하는 ‘페더러의 과학’을 몇 가지만 간추려 소개한다.

페더러는 초보 그립?

테니스는 골프와 함께 그립이 가장 중요한 운동으로 지목된다. “자루를 그까짓 것 어떻게든 잡든 무슨 차이가 크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립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팔뚝 어깨 등의 회전까지도 달라지는 게 보통이다. 한마디로 전혀 사소한 차이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효율적인 테니스 그립은 남자 프로선수를 기준으로 할 때 세미 웨스턴으로 수렴되고 있다. 국내외 아마추어들도 그 영향으로 최근에는 세미 웨스턴 그립을 주로 잡는 경향이 있다.

반면 페더러는 전통적이며 테니스 입문 때 주로 잡는 이스턴 그립을 쥐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웨스턴 그립을 하게 되면 팔뚝 안쪽이 하늘로 향하며, 이스턴은 그냥 막대기를 쥐듯 일상적으로 라켓을 쥔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페더러는 엄밀히 말하면 이스턴과 세미 웨스턴의 중간쯤 형태로 공을 칠 때가 많다. 높은 공 낮은 공 가릴 것 없이 이스턴 계통 그립은 공을 자연스럽게 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페더러가 받아치기에 능하고, 상대에게서 넘어온 공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프로선수들이 이스턴을 제쳐 두고 세미 웨스턴을 선호할까? 세미 웨스턴은 스핀과 스피드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에 가장 유용한 그립인 탓이다. 이스턴보다 반응이 조금 느린 문제는 거듭된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 반면 슬라이스나 낮게 깔려온 볼을 치는데 세미 웨스턴은 이스턴보다 불리하다.

페더러가 전광석화처럼 볼을 빨리 잡고 기민하게 상대 진영으로 넘길 수 있는 데는 이스턴 그립의 기여가 적지 않은 것이다.

와이퍼 스윙의 주역

요즘 프로 테니스계에서는 대략 2000년 이전과는 달리 포핸드 기준으로 와이퍼 스윙이 널리 확산돼 있다. 영어 명칭은 ‘windshield wiper’ 스윙인데, 즉 마치 자동차의 유리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닦는 와이퍼와 유사한 궤적을 갖고 있다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와이퍼 스윙과 클래식 포핸드 스윙의 궤적 차이는 테니스 문외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다. 와이퍼 스윙은 전체 스윙 궤적 중 라켓 전면이 상대 선수를 향하는 구간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반면 스윙 준비동작이기도 한 라켓을 뒤로 빼는 이른바 테이크 백은 간결한 편이다.

와이퍼와 클래식 두 스윙의 보다 확실한 차이는 흔히 말하는 피니시 동작에서 목격할 수 있다. 클래식 스윙은 오른손잡이의 경우 왼쪽 어깨 위쪽에서 끝나는데 반해, 와이퍼 스윙은 왼쪽 가슴을 가로 질러 나가며 스윙이 끝을 맺는다.

와이퍼 스윙은 이른바 오픈 스탠스 즉, 공을 치는 선수의 가슴이 상대 코트를 향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어 떠오르는 공을 빨리 잡아 치기 쉽다. 그만큼 공격적으로 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와이퍼 스윙이 널리 유행할 수 있었던 데는 최근 십 수 년 사이에 라켓 성능이 크게 향상돼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도 포핸드를 구사할 수 있게 된 덕이 크다. 와이퍼 스윙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 클래식 스윙이 일종의 선(lined) 스윙이었다면, 와이퍼 스윙은 점(point) 스윙이라는 사실이다.

클래식 스윙에서 포핸드 스트로크는 라켓 면을 지면과 90도 상태로 마치 벽처럼 세워 유지한 상태로 철길 따라 가듯 앞으로 죽 밀어내는 방식이었다. 반면, 와이퍼 스윙은 탁구처럼 공을 보내려는 방향과 순간적으로 직각되게만 공을 라켓 면에 맞추는 식이다.

과거 테니스 스윙에서 탁구 스윙 흉내는 금물이었다. 하지만 페더러를 위시해 여러 선수들이 구사하는 현대 포핸드 와이퍼 스윙은 보다 탁구와 유사한 면이 있다. 나달도 페더러와 함께 와이퍼 스윙을 경기중 자주 구사하는 대표적인 선수이다. 조코비치는 또 와이퍼 스윙과 클래식 스윙을 가장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드라이빙 톱 스핀의 귀재

스트로크의 기본은 드라이빙이다. 동호인들의 초보 시절 레슨을 받을 때 치는 스트로크가 바로 드라이빙 볼이다. 톱 스핀 볼은 나달로 대표되는데, 공이 큰 포물선 궤적으로 그리고 날아가 지면에 닿은 뒤 높게 튀어오르는 특징이 있다.

드라이빙과 톱 스핀의 두 가지 특징을 절반쯤 가진 게 바로 드라이빙 톱 스핀이다. 드라이빙 볼을 닮아 상대 진영 지면에서 한 번 튀긴 뒤 빠르게 지면을 박차고 나감과 동시에 톱 스핀만큼은 아니지만 사뭇 위쪽으로도 많이 튀어 오른다.

페더러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페더러의 스트로크가 끝줄이나 옆줄을 벗어날 것 같으면서도 잘 벗어나지 않고 뚝 떨어지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드라이빙과 함게 톱 스핀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페더러의 드라이빙 톱 스핀은 상체의 부드러운 회전과 함께 공을 직각으로 맞추지 않고 85~90도 각도로 라켓 면을 미세하게 엎어서 친다는 특징이 있다. 페더러는 드라이빙 톱 스핀을 치기 때문에 마치 플랫 볼처럼 네트를 비교적 살짝 걸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페더러 포핸드의 네트 클리어런스는 대략 90센티 정도이다. 네트로부터 공중으로 90센티쯤 간격을 두고 상대로 코트로 넘어가는 것이다. 반면 나달의 경우 네트 클리어런스가 1미터50센티 일 정도로 훨씬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드라이빙 톱은 상대가 맞받아치는 타격 시점을 잡기가 가장 까다로운 스트로크 볼에 속한다. 페더러가 스트로크 랠리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드라이빙 톱 스핀으로 정평이 난 또 다른 선수는 수년 전 유에스 오픈을 우승한 후안 마틴 델 포트(아르헨티나)인데, 그는 큰 키와 긴 리치로 가장 빠르고 무거운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다만 그의 약점은 드라이빙 톱 볼을 치면서 페더러와 달리 상체를 십분 이용하기 보다는 팔목 사용이 많은 것이다. 그는 뛰어난 테니스 자질을 가졌으면서도, 팔목 부상으로 수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페더러는 이처럼 다른 선수에게 흔치 않은 그립과 포핸드 스트로크, 드라이빙 톱 스핀 볼을 갖고 있어, 경기를 공세적으로 풀 수 있고, 이는 경기 시간 단축으로 이어져 체력을 아끼곤 한다. 이는 그가 우리 나이 38세로 테니스 선수로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기량을 유지하며 장수하는 비결로 꼽힌다.

정현 발바닥 부상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정현’이란 이름 두 글자는 지난 열흘여 동안 ‘즐거움’과 ‘기다림’의 대명사였다. 28일 열리는 2018 호주 오픈 결승에서 아쉽게도 그를 볼 수 없으나, 시민들은 그간 아낌없이 그를 응원했고, 정현 선수 또한 최선을 다해 성원에 보답했다. 더 무엇이 필요하랴.

그러나 테니스는 영원할 것이고, 정현 선수의 향후 선전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 자신 역시 꿈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한바탕 축제의 꿈이 깨기도 전에 정현 선수의 과제를 운운하는 건, 성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제라는 말을 희망 사항 정도로 바꾸면, 그에게도 또 시민들에게도 각자의 몫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정현의 과제

26일 준결승전에서 정현은 발바닥 부상으로 페더러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기권했다. 발바닥 부상은 일과성 해프닝이 아니다. 발바닥 물집은 페더러 그 자신도 경험해 봤다고 밝혔듯, 남녀 프로 테니스 선수들 사이에 가장 흔한 부상 가운데 하나다.

발바닥 물집이 터져 살이 삐져나오는 정도였으니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정현과 그의 스탭들은 발바닥 부상을 가장 무겁고 심각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의학적으로 이번 부상은 한 달 이내에 완치된다. 하지만 발바닥 부상을 불러온 정현의 플레이 스타일은 쉬 교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현은 누구보다 많이 뛰는 스타일이다. 받아치기는 세계 최정상급이고, 서브로 포인트를 끝내거나 짧은 랠리 몇 방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유형이 아닌 까닭이다. 많이 뛰는 선수들이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거나 무릎에 부상이 흔한 건 자명한 일이다.

나달이 페더러보다 5살이나 어리지만, 가장 부상이 많은 선수 가운데 하나인 것은 많이 뛰는 그의 스타일 때문이다. 그의 부상이 하체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플레이 스타일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지만, 한 단계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으로 좀 덜 뛰는 테니스를 지향해야 한다.

아울러 체중 감량 여지를 체크해 봐야 한다. 16강전에서 맞붙었던 조코비치는 정현과 키가 188cm로 같지만, 체중은 정현보다 10kg 덜 나가는 77kg이다. 그까짓 10kg이 아니다. 이는 뛰어다니는 게 숙명인 운동선수에게는 어마어마한 차이이다.

오랜 시간 미국 랭킹 1위를 유지한 역대 최고의 서버 앤디 로딕이나, 그와 절친한 세계 톱10 선수 마디 피시 등은 감량을 통해 선수 생명을 연장하고 좋은 성적을 얻은 대표적 사례였다. 이 두 사람 말고도 체중 감량이 코트 위에서 성공으로 연결된 예는 허다하다.

올해 호주 오픈은 실질적 상위 랭커의 결장이 가장 많았다. 지난 20여 년 간의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앤디 머레이(영국), 니시코리 케이(일본)가 대표적이고, 조코비치 역시 막판 망설이다가 출전한 케이스이다. 페더러의 동료 스탠 바브링카(스위스)는 통증을 호소하며 어거지 출전했다가 초반 고배를 들었다.

테니스는 ‘쉬지 않고 뛰는 황소’ 스타일의 나달 등장 이후, 또 페더러와 조코비치 머레이 등의 각축으로 황금시대를 구가하며, 가장 격렬한 스포츠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다. 세계 프로 선수들이 지난해 말 대회 숫자 축소를 놓고 갑론을박 했던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요즘 인기 스포츠로 부상한 종합 격투기 선수들이 실제 경기를 치르는 것은 1년에 몇 차례 안된다. 무엇보다 격렬하고 부상이 많은 까닭이다. 테니스는 치고 받고 피만 흘리지 않을 뿐, 선수들을 속된 말로 반쯤은 죽여 놓는 가장 육체적으로 고된 스포츠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장기간 부상으로 신음해야 했던 세계 톱 10급 선수들의 공통점이 유난히 많이 뛰거나 체중이 과하게 나가는 선수라는 사실이 시사 하는 바는 막중하다.

시민들의 과제

정현은 테니스 국가대표지만, 호주 오픈을 비롯한 그랜드슬램 대회와 세계테니스협회(ATP) 주관의 대회에는 개인자격으로 참가한다. 그의 선전으로 국격이 올라가고, 그가 졸전을 펼치면 나라의 위신이 깎인다고 여길 수 없다.

정현이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일원이고,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 좋은 성적을 거두니 즐거운 것이며, 패배하면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다. 정현의 이번 호주 오픈 쾌거는 한국이라는 공동체 틀에서 보면, 시민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숙제를 안겨줬다.

어줍잖지만 영어로 표현하면, 테니스가 한국 사회에서 ‘fair share’를 갖고 있느냐는 물음으로 치환될 수 있다. 뭐라 우리 말로 옮겨야 그 느낌을 최대로 살릴지 모르겠지만, ‘제 몫’ 혹은 ‘응분의 몫’ 정도가 어떨까 싶다.

사계절 운동할 수 있는 테니스 코트는 오히려 늘어나는데, 갈수록 줄어드는 테니스 인구, 그리고 평소 시들한 테니스의 인기는 테니스협회 관계자나 테니스 선수들만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시민들이 야구 축구 농구를 제쳐두고 테니스에 억지로 관심을 가지라는 뜻도 아니다. 다른 주요 스포츠에 비해 제 몫 만큼의 테니스 인구, 인기가 없다는 얘기이다. 테니스는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 그리고 가까운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한국인의 체질 체형 취향이 테니스와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정현 선수의 선전, 그리고 그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보면 한국인도 유럽인이나 아메리카인, 일본인들과 같은 보편적인 ‘테니스 정서’를 갖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테니스 인구가 적고, 인기가 저조한 이유를 현역 선수들의 부진한 실력 때문이라고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탄탄한 테니스 저변이 확률적으로 훌륭한 선수를 다수 키워낸다는 점을 외면해선 안 된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일본의 경우는 전적으로 후자인 축에 속한다.

부상으로 이번 대회 불참했지만, 아시아 길러낸 최고의 테니스 스타 니시코리는 유소년 테니스의 산물이다. 일본은 니시코리 외에도 세계 랭킹 100위 안에 다른 2명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100위 권 밖에도 줄줄이 일본 선수들이 분포한다. 테니스를 즐기는 문화가 널리 확산된 가운데, 어렸을 때 걸출한 자질을 보이는 선수가 자연스레 프로 선수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테니스는 체력이나 체형 등의 측면에서 한국인이 얼마든지 세계인들과 겨뤄볼 수 있는 종목이다. 개인적으로 농구를 가장 좋아하지만, 예를 들어 한국인의 체형 체력적 특징은 미국프로농구(NBA)의 주전급 선수를 길러내기에는 불리한 구석이 있다.

거칠게 말해, 한국인 가운데 세계 ‘톱10’에 들 수 있는 테니스 선수가 10~30년 마다 한명쯤 나온다고 가정하면, 미국NBA에서 톱 10 올스타에 들 수 있는 한국인 농구 선수가 나오려면 훨씬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꼭 농구가 아니라 하인즈 워드 선수로 주목받았던 미식축구 같은 데서도 세계 톱 10급 선수가 나오기는 가뭄에 콩나기처럼 어렵다.

테니스는 한국 사람들이 잘 할 수 있고, 또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그에 걸맞은 인구도 없고, 인기도 형편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 전체가 좀 고민을 해야 한다. 테니스가 애닯게 ‘울면서’ 우리 시민들의 사랑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제2, 제3의 정현 선수가 출현하기를 고대한다면 시민들도 해야 할 몫이 있다.

정현, 페더러에 져도 남는 시합인 이유는?

정현 선수가 24일 열린 호주 오픈 8강 경기에서 큰일을 해냈다. 한국인 최초로 테니스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4강에 진입한 것이다. 정현은 24일 벌어진 테니스 샌드그렌 선수(미국)와 경기에서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그리 어렵지 않게 상대를 물리쳤다.

국내외의 관심은 26일 열리는 4강전에 모아지고 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의 예견대로 상대는 페더러다. 잘된 일이다. 세계적인 선수로 크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레전드인 페더러와 같은 선수를 상대해야 한다. 이기면 좋지만 져도 잃는 게 없다. 페더러와 그랜드 슬램에서 4강전을 치른다는 그 자체로 세계 테니스 팬들의 뇌리에 정현은 깊이 각인될 것이다.

정현이 객관적인 면에서 페더러에 앞서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체력이다. 이번 대회 페더러는 주간 세션 경기를 한번 치렀다.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훌쩍 웃도는 날이 많았던 이번 대회 동안 야간 경기를 주로 한다는 것은 큰 이득이다. 경우에 따라 주간 경기는 야간 경기에 비해 체력 소모가 2배 안팎 클 수 있다. 하지만 15살 가량 젊은 나이는 정현의 틀림없는 강점이다.

체력은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정현의 게임 전략은 여러 가지로 이유로 체력전에 맞춰져야 한다. 매 게임, 매 세트 가능한 포인트를 길게 끌고 가는 것이다. 처음 두 세트 가운데 한 세트만 건질 수 있다면, 희망컨대 승리까지도 점쳐볼 수 있다.


페더러와 체력전을 벌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 하나 하나 짚어 보자. 페더러는 10대 때부터 랠리를 길게 끌고 가지 않는 경기 스타일을 고수해 왔다. 나달보다 5살이나 더 먹었지만, 그의 몸에 새겨진 마일리지는 나달보다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다. 우리 나이 37살에도 최상급 기량을 유지하는 데는 경기당 시간이 현저하게 짧은 그만의 플레이 스타일이 큰 몫을 했다.

체력전으로 끌고 가면, 페더러는 몸만 피곤해지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을 것이다. 테니스는 골프와 함께 대표적인 멘털 게임이다. 아주 예민한 운동경기여서 매치 중 몇 차례 찾아오는 스트레스나 기분 언짢음만으로도 흐름이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체력전으로 끌고 갈까? 수많은 요소들을 다 짚어보고 대응책을 마련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몇 가지 고갱이만 훑어보자.

우선 서브. 페더러는 세계테니스협회(ATP)집계하는 서비스 랭킹에서 3위에 당당히 올라 있다. 서비스 랭킹을 좌우하는 건 속도나 에이스 숫자만이 아니다. 상대가 받아 넘기더라도 결국 서버가 포인트를 잘 챙길 수 있는 서비스를 얼마나 잘 구사하는가가 중요하다.

페더러는 서브 속도만으로는 세계 상위 10위권에서도 한참 멀리 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다양한 구질의 서브를 구사하고, 무엇보다 서비스 폼을 숨기는 데 귀재이다. 그의 서브는 읽어내기가 가장 어려운 것으로 선수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반면 상대 서브는 가장 잘 읽는 축에 속한다.

서비스 폼 속이기(혹은 숨기기)의 원조는 또 다른 테니스 전설 피트 샘프라스이다. 한동안 페더러의 코치였으며, 앞서 피트 샘프라스를 지도한 유명한 코치 폴 애너코니는 샘프라스 서비스를 독특한 훈련법으로 강화시켜준 장본인이다.

그는 샘프라스가 서브를 넣기 위해 토스를 하면 그때서야 원, 투, 쓰리 등으로 미리 약속한 지점의 번호를 옆에서 불러줬다. 같은 폼으로 공을 토스 한 뒤 여러 다른 위치에 서비스를 꽂아 넣도록 하는 기술을 꽃피운 사람이다. 페더러가 서비스 폼 숨기기에서 전성기 샘프라스를 능가하는 만큼 이런 능력은 두 번 강조할 필요도 없다.

또 하나 페더러는 거의 유일하게 점 서브(spotted serve)를 구사하는 선수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달이나 조코비치 같은 최일류 선수도 대부분 라인 서브(lined serve)가 기본이다. 점이 아니라 선 즉 방향을 잡아 서브를 넣는 것이다. 헌데 페더러는 상대 서비스 박스의 어떤 지점을 콕 겨냥해 서브를 넣는다.

페더러의 점 서브는 그의 매우 다양한 서브 구질과 함께 그로 하여금 상대의 서브 리턴 예측을 쉽게 한다. 페더러의 점 서브는 그가 랠리를 길게 가져가지 않는 원천이기도 하다. 테니스 자질만으로 따지면 젊은 선수들 가운데 최고라는 호주의 닉 키리오스는 연전에 단호하게 이런 말을 했다.

“공격 때, 1,3,5구, 수비 때 2,4,6구에서 페더러만큼 샷 플레이스먼트가 좋은 선수는 없다.”

페더러 서브를 장황하게 얘기하는 건, 그의 서브에 압박감을 주지 않고는 경기를 애초에 체력전으로 끌고 가기도 어렵고, 그가 현존 선수 중 가장 탁월한 서버라는 점을 잊지 말라는 의미이다. 24일 8강전을 앞두고 적지 않은 국내 언론이 정현이 상대인 샌드그렌을 기량에서 다 앞서지만, 서브만큼은 샌드그렌 선수가 우위라는 식의 보도를 내보낸 적이 있다.

그러나 ATP분석에 따르면, 올초 뉴질랜드에서 벌인 샌드그렌과 경기에서 정현은 에이스 숫자 7대 2로 샌드그렌에 밀렸지만 서비스 평가점수는 오히려 더 높았다는 사실을 국내 언론들은 간과했다. 서비스는 에이스나 속도로만 평가되는 게 아니다. 정현이 페더러가 상대한 그간의 선수들보다 페더러의 서비스를 잘 처리할 수 있다면, 승부를 길게 끌고 갈 수 있다.

랠리를 길게 끌고 가는 또 다른 기본은 수세에 몰렸을 때 상대의 가운데 쪽으로 공을 밀어넣는 것이다. 이런 방어적 샷은 스피드가 좋을 필요도 없다. 가운데로 깊게만 떨어진다면 제 아무리 페더러라 할지라도 각을 잡아서 치는 데 애를 먹고 범실이 있을 것이다. 강하지 않은 볼을 상대 코너에 깊숙이 힘차게 집어 넣으려면 혼자 힘으로 스핀과 스피드를 다 증강시켜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들어가기 쉽고 이에 따라 에러 또한 나기 쉬운 것이다.

페더러는 또 “테니스는 깊이가 아니고 각”이라는 신념을 가진 선수이다. 그는 발리마저도 교과서와 달리 깊이 넣기 보다는 각을 잡는 예가 많다. 속칭 앵글 샷의 귀재인 것이다. 페더러에게 섣부른 앵글 스트로크 공격은 되치기로 종착될 수 있다.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또 하나 페더러의 독보적인 면은 그 어떤 서브 앤 발리어 보다 넷트 플레이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페더러는 앞서 언급했듯이 볼을 길게 치지 않는 스타일이다. 51대 49 정도만 유리해도 공격으로 막바로 전환한다. 포인트를 80대 20 정로 익힌 뒤에야 결정적인 공격을 하는 나달과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페더러는 정현의 젊음과 기세를 의식할 것이다. 26일 경기에서 잦은 네트 대쉬는 불보듯 뻔하다. 페더러의 네트 대쉬는 어느 정도는 패턴이 있다. 상대의 백핸드 쪽에 깊숙이 공을 보내놓고 각을 좁혀서 네트로 길을 따라 들어오는데 상대 입장에서는 패싱 각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정현은 패싱에서 세계 정상급 수준의 기량을 갖고 있다. 페더러의 네트 대쉬를 좌절시킬 수 있는 패싱 각을 다듬어 낸다면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다.

서브와 앵글 샷, 네트 대쉬 이렇게 3가지 측면에서 페더러를 일정 수준 압박할 수 있다면, 랠리를 최대한 길게 가져가고 상대적으로 많은 범실을 유도할 수 있다. 당연히 경기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무엇보다 페더러를 괴롭히려면 초반 1,2세트가 중요하다. 두 세트 가운데 한 세트만 뺏어올 수 있다면 객관적으로 크게 밀리는 승률을 꽤나 획기적으로 높게 끌어올릴 수 있다.

여전히 정현이 언더독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차분한 정현으로서는 지든 이기든 이만한 배움의 기회는 평생 다시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생애 가장 큰 레슨이 될 수도 있는 준결승이니 만큼 후회없는 경기를 펼치도록 마음을 가다듬길 빈다.

테니스는 막 물이 올라서, 또 영어는 이제 맛을 알기 시작해서 정현은 한참 재미를 느끼는 듯하다. 젊은 외국인 동료 테니스 선수들에게서 정현이 그간 자주 듣던 말이 있을 것이다. Nothing to lose. 잃을 게 없는 경기라는 점, 응원하는 사람들보다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현 살아있는 테니스 전설과 겨룬다?

‘테니스=정현.’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대회 8강에 오른 정현은 말 그대로 한국 테니스의 역사를 다시 썼다.

프로스포츠는 단체경기든 개인경기든 소수의 스타가 좌우한다. 나라를 가릴 것 없는 현상인데 한국(인)의 경우 골프=박세리, 야구=박찬호, 피겨 스케이팅=김연아 등이 그런 예이다.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세계 최강이었던 노박 조코비치를 꺾은 정현은 8강전을 코앞에 두고 있다. 정현 선수가 4강 정도까지만 올라도 그 파급 효과는 김연아 박찬호 박세리와 맞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포츠는 단순한 체육활동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전반과 문화, 심지어 경제에 까지 영향을 준다. 조코비치와 16강 경기를 돌아보고 8강전 이후를 내다보는 건 그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조코비치 상대 16강전=조코비치는 2016년 프렌치 오픈에서 우승할 때까지만 해도 말 그대로 무적이었다. 기술적으로 역사상 가장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12번 그랜드 슬램 대회를 우승했는데, 페더러, 나달과 같은 50년 혹은 1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선수들 사이에서 기록한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조코비치는 현 세계 랭킹 1위인 나달과 상대전적에서 26승 24패로 근소하지만 우위를 지키는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페더러와 상대전적 역시 23대 22로 1승 앞선다.

정현 선수와 맞붙은 22일 조코비치는 분명 2015년 혹은 2016년과 같은 몸 상태는 아니었다. 종합적 컨디션은 그의 기준으로 볼 때 A에 미치지 못하고 잘하면 B플러스, 혹은 B정도였다. 그러나 조코비치는 B플러스의 컨디션일 때도 수없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세계 10위권 이내의 선수들도 그의 공략에 애를 먹었다.

22일 16강전에서 그의 결정적 약점은 오른쪽 팔꿈치 부상이었는데, 그는 경기 후 첫 세트 후반부터 마지막 3세트까지 계속 통증 때문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조코비치의 팔꿈치 부상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테니스 선수들 가운데 팔꿈치를 가장 잘 쓰는 편이다. 그가 키에 비해 남달리 가벼운 체중에도 불구하고, 공의 파워, 회전력, 컨트롤이 남다른 건 그의 뛰어난 팔꿈치 활용에 상당 부분 의지한 까닭이다. 페더러는 이런 점에서 팔꿈치 사용을 최소화한 스타일로 대조적이다.

‘칼로써 흥한 자 칼로써 망한다’는 격언도 있는데, 조코비치는 향후에도 포핸드 스트로크때 팔꿈치 활용을 달리하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팔꿈치가 그를 괴롭힐 수도 있다.

최상은 아니지만 B급 이상인 컨디션의 조코비치를 상대로 완승을 거둔 정현에 대해 칭찬은 아무리 해도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B급 컨디션의 조코비치에게 완승을 거두려면 세계 10위권 정도의 기량은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조코비치가 앞선 32강전에서 21번 시드의 하모스-비놀라스(스페인)를 셋트 스코어 3대0으로 가볍게 물리치고 16강에 올라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양 선수가 압도적으로 상위권을 점하는 남자 테니스에서 동양 선수가 10위권 실력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일본의 케이 니시코리와 레전드로 남아 있는 미국의 마이클 창 정도가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10위권 기량을 보인 ‘유이’한 동양계 선수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테니스 샌드그렌(Tennys Sandgren)과 8강전=남자 테니스는 여자 테니스에 비해 이변이 극도로 적은 편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남자 테니스에서 하위 랭킹이 상위 랭킹 선수를 꺾는 일이 드물다는 뜻이다. 8강전을 펼치는 정현은 50위권 밖이고, 상대 테니스 샌드그렌은 100위권 안쪽인 경우로, 두 사람은 이번 호주 오픈 남자 경기에서 가장 큰 이변의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대회 통계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샌드그렌은 8강전에서 정현을 넘어서기 힘들다. 샌드그렌은 1~4회전까지 총 509포인트를 얻고 449점을 내줬다. 1.13점을 딸 때, 1점을 잃은 정도였다. 반면 정현은 4경기에서 441점을 얻고 357점을 실점했다. 1점 잃을 때, 1.23점을 딴 셈이다. 득점력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물론 테니스는 상대가 있는 경기인데, 정현은 조코비치 외에도 세계랭킹 4위인 알렉산더 츠베레프를 상대하는 등, 샌드그렌보다 훨씬 어렵고 랭킹이 높은 상대를 대상으로 경기를 치렀다.

정현은 또 대포알 서브의 츠베레프나 기술적으로 무결점에 가까운 조코비치 같은 플레이 스타일에 관계없이 승리를 이끌어 냈다. 반면 샌드그렌의 상대들은 모두 랠리를 길게 가져가는 스타일이었다. 정현이 최소한 수비에서는 샌드그렌보다 확실히 한수 위라고 할 만한 대목이다.

정현은 이번 호주 오픈이 아니더라도, 세계 남자 테니스계에서 수비력이 가장 뛰어난 축에 속한다. 코트 커버리지가 월등하다는 뜻인데, 정현을 확실히 넘어설 수 있는 수비력은 전성기의 나달과 조코비치, 페더러 정도이다. 조코비치가 정상 상태가 아니므로, 정현은 이번 호주 오픈만 기준으로 한다면 나달, 페더러와 어깨를 나란이 하는 세계 최정상급의 수비력을 보이고 있다.

서브를 필두로 한 공격력을 기준으로 해도, 정현의 우세가 두드러진다. 샌드그렌은 상대 실수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점수를 창출한 위너(winner) 숫자에서 지난 4경기 가운데 2경기에서만 상대를 앞섰고, 다른 2경기에선느 상대보다 위너 숫자가 적었다.

이에 비해, 정현은 지난 4 경기 모두에서 상대보다 위너 숫자가 많았다. 강자들을 만나 시종일관 위너가 많았다는 것은 공격력 또한 통계로 볼때는 정현이 한수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반수는 위라는 것이다.

요약컨대, 피로 누적 등으로 인한 갑작스런 경기력 저하 등의 요인만 없다면, 정현은 샌드그렌 전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통계는 말해주는 것이다.

■페더러 넘어설 수 있을까=정현의 이번 대회 경기력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랭킹 1위 나달이 아니라, 2위인 페더러이다. 16강전 대진표가 확정되기까지 페더러가 나달보다 더 우세한 경기력을 보인 점도 있지만, 경기 스타일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정현은 페더러보다는 나달이 상대적으로 상대하기 쉽다.

어쩌면 페더러는 이번 대회 최강의 수비력을 보인 정현의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유일한 창을 가진 선수일 수도 있다. 페더러는 스트로크만 해도, 플랫, 톱스핀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여기에 드롭샷과 넷트 플레이 감각이 발군이어서 상대 선수의 리듬을 뺏는데 역사상 그만한 선수도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랠리를 여간해서는 자기 서브권 기준으로 5회 혹은 7회 이상으로 잘 끌고가지 않는 경기 스타일이어서, 길게 주고 받는 볼이 자주 나올 확률이 떨어진다. 나달은 톱스핀을 주무기로 코트 좌우로 공을 쉴 새 없이 뿌리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경기를 한다. 실제로 정현은 나달이 최고의 기량을 보이는 흙 코트 경기에서도 지난 해 크게 밀지 않는 모습을 여러차례 보여줬다.

페더러와 4강전을 치른다는 게 불운이라면 불운인데, 페더러에게도 약점은 없지 않다. 페더러는 우리 나이로 37살, 지금까지 무실 셋트 경기를 펼쳐왔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나이를 속이긴 어렵다. 14살 어린 정현이 4강에 오를 경우, 페더러를 지치게 만든다면 승산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 정현에게 승리를 안겨준 수훈 값 샷을 하나만 고르라면 위기에서 받아치기를 할 때 상대 코트 가운데로 보내는 공이다. 구석이 아닌 코트 가운데로 보내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데, 이를 받는 상대입장에서는 각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랠리를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속된 말로 상대로 끊임없이 ‘갈아 버리는’ 샷, 이 샷으로 정현은 상대의 진을 빼고 끝내는 승리를 거머쥔 것이었다. 정현이 페더러와 만일 4강전을 벌이고, 처음 두 셋트 가운데에서 1세트만 뺏어올 수 있다면, 경기는 예측하기 힘든 국면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손자야 울지마라 할배가 간다

“얘가 아빠 품을 침대로 인식하고 있나 봐. 아빠가 안기만 하면 자네.” 얼마 전 저녁 때 울먹울먹 칭얼대고 자꾸 용을 쓰는 손자를 받아 안은 뒤 금세 잠을 재우자, 딸이 한마디 한다.

“그게 아냐, 내가 편안하게 안으니까 잘 자는 거야.” “어이구, 또 자랑질이시네. 아빠가 애 보는데 최고라는 거잖아. 그 말을 하고 싶으신 거지?”

딸이나 아이 엄마가 손자를 보고 있을 때도, 나는 주변에서 ‘비상 대기조’로 서성이곤 한다. 왜인지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손자가 크게 보채기 시작하고, 잘 달래지지 않을 땐 후딱 넘겨받기 위해서이다.

“걱정 마, 내가 널 이겨먹으려는 게 아니야. 난 결정적 ‘한방’이 없잖니. 내 말은 아이의 동태를 잘 파악하고 가능한 불편하지 않게 다양한 시도를 해보란 뜻이야. 내가 도저히 안정시킬 수 없다싶으면 네게 넘기잖니?”

딸이나 아이 엄마도 인정하다시피, 손자를 식구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잘 재운다. 하지만 영아 산통과 같은 극심한 불편함이 유발되면, 아이는 목이 터져라 5분이고 10분이고 쉬지 않고 울어대고 얼굴은 시뻘겋게 변하는데 이럴 땐 나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안절부절 속만 타고 나 또한 공황에라도 빠져버릴 거 같은 느낌뿐이다.

젖먹이가 사력을 다해 울 때 지어지는 표정은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견디기 힘든 고통감을 자아낸다. 아마 최고의 연극배우도 그렇게 곧 숨 넘어 갈 거 같은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는 잘 하지 못할 것 같다.

손자가 극심하게 오랫동안 울어 댈 땐 젖을 물릴 수 있는 제 엄마에게 넘기는 도리 밖에 없다. 이럴 땐 남자라서 수유 가능한 젖이 없다는 게 정말 한탄스럽다고 느껴진다. 딸의 위치를 감히 넘볼 수 없는 한계가 엄존하고, 이를 인정해야 할 땐, 손자 키우기에 진력을 한들 ‘무수리’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는 좌절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딸보다는 내가 육아에 낫다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도 있다. 무엇보다 젖먹이라는 존재를, 좀 심각하게 얘기하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내가 딸 보다는 체계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젖먹이들은 ‘사기꾼’이다. 동시에 그들은 ‘빰므 빠딸’이거나 ‘옴므 빠딸’적 존재이다. 이 치명적인 사기꾼에게는 속는 것이, 혹은 속아주는 것이 정상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래, 젖먹이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제 어미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주변사람들까지도 꼼짝 못하게 하는 수단들을 발전시켜 왔다.

응애~ 응애~, 젖먹이의 울음소리만큼 아름다우면서 처량하고 안타깝고 긴박감까지도 불러일으키는 세상의 소리가 몇이나 될까? 알람으로 치자면 경보나 비상벨 소리는 저리가라 할 정도이다. “수유한지 얼마 안 되는데…” 이런 류의 합리적 판단이 끼어들 틈은 없다. 나도 모르게 미묘하게나마 심박수가 올라가고 근심스런 얼굴로 아이 곁으로 달려가게 돼 있다.

어디 울음소리만 그런가? 통통한 볼 살이며, 제 어미 뱃속부터 충분히 연습해 마스터한 배냇짓 살인 미소에 이르기까지 두 눈 뜨고 보면 전율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젖먹이는 그 존재 자체가 치명적이다. 옛 시절 우리 할머니들이 손자 손녀의 대용어로 썼던 말, ‘강아지’, 주먹만 한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 것들이 아마 ‘미칠’ 정도로 예쁜 존재라는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람 새끼가 강아지만 못할까?

“우리 손자 서울 올라가면 똥 냄새도 그리울 것 같죠?” “하나마나 한 말을 뭐 하러 합니까?” 서울 제집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은 이 즈음 어떤 날은 아이 엄마가 네댓 차례씩이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 내가 유달리 닭살 할아버지라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젖먹이들의 변 냄새는 묘한 마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어디 변 냄새만 그러랴? 옷에서 나는 쉰 요구르트 같은 냄새, 한 이틀 목욕시키지 못할 경우 나는 시큼 퀴퀴한 듯한 몸 냄새도 조금은 역겨운 듯 하지만 틀림없이 사랑스러운 냄새이다.

과학자들의 연구가 아니더라도, 젖먹이들은 엄마를 인식하며 엄마 또한 제 새끼들의 냄새를 인식하게 돼 있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사람들은 익히 아는 내용이겠지만, 아프리카 초원을 수만 마리씩 떼 지어 이동하는 누(gnu)들은 포식자들로부터 새끼들의 생존율을 높이려 거의 같은 시기에 출산을 한다. 계속 이동해야 하다 보니 미아가 수 없이 생겨나는데, 이때 어미와 새끼는 얼굴이나 몸 생김새가 아니라 바로 냄새로 서로를 파악한다.

내가 손자를 안거나 재울 때 동원하는 체위는 최소 10가지가 넘는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불편하거나 힘든 동작일수록 반비례해 손자는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루 18시간 안팎 혹은 그 이상 잠을 자야하는 젖먹이들에게 잠은 밥(수유)과 함께 삶을 구성하는 2대 요소이다.

젖먹이들의 잠은 성인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똑같은 밥만 먹으면 질리고 균형 잡힌 영양을 취할 수 없듯 다양한 동작으로 잠잘 수 있게 하는 게 아이를 편안하게 하는 요체 중의 하나이다.

나는 갖은 자세를 개발해 내는 등 적극적으로 온 힘을 다해 손자를 돌보지만, 식구들은 때론 극성이라고 흉을 보기도 한다. 뭐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어찌되었건 나 같은 열성파에게 젖먹이 키우기는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처럼 ‘전쟁 같은 사랑’이다.

그런가 하면 내 새끼 내 손으로 돌본다는 명분만 챙기는 게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에서부터 삶의 무상함까지를 일거에 되새기게 하는 성숙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무튼 치열하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달려드는 미친 사랑이 하루 평균 3~4시간 수면에도 손자 육아를 할 수 있는 원천에 다름 아니다.

앞으로 몇 명을 더 돌볼 여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손자 육아는 이번이 처음인데, 나의 극성 혹은 열성은 친척이나 친구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열성적 양육’에 따른 에피소드 또한 한둘이 아니다. 20년이 다 돼 가는데, 당시 외국에서 혼자 딸과 아들을 키우면서 한번은 3시간 가까이 걸려 수제 인절미를 해준 일도 있다.

어린 나이에 외국에 갔지만, 아들과 딸은 고국에서 먹던 인절미 맛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른바 코리언 마켓에서 인절미를 사올 수도 있었지만, 어느 날인가는 갑자기 찰진 제대로 된 인절미를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거였다.

극성 발동. 퇴근길에 코리언 마켓에서 찹쌀을 한 되쯤을 사다가 질퍽하게 밥을 하고, 도마에 쏟아 부은 뒤 수저의 뒷등으로 짓이기기를 2시간 넘게 했다. 온기가 식지 않은 찹쌀 떡 베이스에 즉석에서 콩고물을 듬뿍 묻혀 주니 애들은 정말 좋아라하며 맛있게 먹었다. 인절미 작업을 끝내고 잠자리에 든 그날 밤 손가락 마디마디며 온 어깨가 쑤셨지만 지금도 여전한 뿌듯함으로 뇌리 한 구석에 남아 있다.

사람이 크면 생각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태생이 ‘사기꾼’인 젖먹이들은 생각이 그리 많지 않다. 돌보는 사람의 마음과 몸 동작을 거의 100% 가까이 흡수한다. 손자든 내 자식이든 돌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흡수율이 높으니 이만큼 효율적인 케어 기빙이 없다. 다만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극성을 손자가 그대로 받아들여, 커서 너무 극성스럽지는 않았으면 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난 이번에 손자 돌보기 전까지는 내전 중인 시리아의 여성이 아픈 혹은 다친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사진 같은 것들을 ‘그런가 보다’하고 무심코 기계적으로 봐 넘기곤 했다. 하지만 보름쯤 전이던가 울어대는 손자를 나도 모르게 웅크리고 감싸 안으면서, 내 자세가 그 사진 속 여인을 닮았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을지도 모르는 극성스런 혹은 열의 가득한 손자 육아를 통해 또 하나의 평범한 교훈을 얻고, 난 오늘도 손자 덕분에 손톱만큼 성장한다.

손자 보는 ‘기술’은 하늘이 내려준다?

“장모님이… 정말 몸서리 쳐지네요. 저희들 전율했어요.”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10월 초 딸은 조리원에서 퇴소했고, 갓난쟁이 손자도 마침내 제 집으로 돌아와 안식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매일 계속되는 혈변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1주일 남짓 중환자실을 거쳐야 했던 손자가 전쟁에서 끝내는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손자의 귀가로 인한 안도감은 딱 하루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 이틀째 되던 날, 또 혈변을 본 거였다. 사위는 이런 사실을 식구들 가운데 오로지 한 사람 나한테만 알렸다. 제 처까지 합해 모두 세 사람만이 혈변의 재발을 알게 됐다. 퇴원 직후 손자가 집에서 잘 노는 모습을 2분 정도 되는 동영상으로 찍어 돌렸었는데, 포항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나 서울의 고모 공주의 외가 식구들, 미국의 외삼촌까지 그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가슴을 쓸어 내렸고, 즐거워했다.

다만 한 사람 외할머니만은 예외였다. 동영상 가운데 2~3초 손자가 찡그리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놓치지 않은 것이었다. “여보 우리 손자 정말 괜찮은 거예요? 잠깐이지만 찡그림이 그냥 아픈 모습이 아니던데요.” 아내는 평소답지 않게 눈썹을 펴지 않고 정색을 하고 질문을 해대는 것이었다. “애들 말로는 괜찮데요. 잘만 논답니다. 신경 좀 끄세요. 이러다 당신이 병나겠어요.”

혈변이 또 시작된 걸 알면서도, 나는 아이 엄마한테는 딱 잡아뗄 수밖에 없었다. 아이 엄마는 아침 밥상머리에서도, 점심때는 문자로, 자기 전에도 서너 차례 하루 예닐곱 번씩 손자가 정상인지를 물어왔다. 2~3일 계속 그러기에 사나흘 째 되던 날에는 약간 화를 내며 퉁명스럽게 대꾸하기 시작했다. “아니 재수 없게 왜 그래요. 괜찮다고 하잖아요. 사람이 사람 말을 못 믿고 참…”

아이 엄마에게는 연막을 피우는 한편, 하루에도 네댓 번 사위와 딸에게 손자의 변 상태를 물어봤다. 혈변은 한 차례에 그치지 않게 이튿날까지 계속됐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우유 같은 거 먹은 적 있어? 요구르트도 먹지 마. 유제품은 일단 손도 대지 말고, 콩 같은 음식도 끊으라고 해. 이틀 만 더 지켜보고 이상 있으면 그땐 응급실 가도록 하자.”

“네, 장인어른, 그런데 장모님은 애가 안 좋다는 걸 어찌 아셨을까요? 애 엄마도 저도 너무 놀랐어요. 신기가 있으신 걸까요?” “나도 솔직히 놀랍고 뜨끔했다. 어쨌든 중환자실에 또 입원하게 되면 나는 죽었다. 더 이상 혈변을 보지 않고 그냥 지나가야 할텐데…”

딸은 이른바 자연주의 출산을 했다. 제왕절개나 무통분만 같은 걸 원칙적으로 하지 않고, 온전하게 자신과 아이의 힘만으로 출산했다. 비교적 순산이었다. 극심한 본격적 산통은 4시간도 채 지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4시간에 걸쳐 수십 센티에 불과한 산도를 기어 나와야했던 손자는 사투를 벌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제 엄마 피를 꽤 많이 먹기도 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처음에는 혈변의 원인을 자연분만에서 찾으려고도 했지만, 그다지 일리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만 가지 생각을 다해봤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자연분만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연하지만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딸의 자연분만 선택은 어쩌면 이미 정해진 길이었을 수도 있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인 까닭이다. 우리 집 방 구석구석에는 거미줄이 적지 않다. 자연을 존중하는 아이 엄마가 거미가 밥을 굶지 않도록 일부러 없애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모기도 파리도 나는 아이 엄마가 없거나 안 볼 때 틈을 타 때려잡곤 한다.

아이 엄마는 살아있는 모든 걸 대하는 마음이 사뭇 경건한 축에 속한다.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마음이 남다른 편인 까닭에 아이 엄마는 2~3초에 불과한 손자의 찡그림 얼굴 동영상을 보고 나 같은 사람은 간파해내지 못하는 어떤 이상을 포착해 냈을 수도 있었다고 추정해본다.

대략 10년 전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거창한 목표 아래, 시골에서 ‘귀연생활’을 시작한 내 경우, 말하자면 무늬만 자연주의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자신 속 다르고 겉 다를망정, 삶은 자연을 닮은 게 가장 좋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하다. 중환자실 신세를 진 손자를 앞장서서 키워보겠다고 할 때는, 그러니 큰 틀은 두말 할 나위 없는 ‘내 입장에서는’ 자연주의 육아였다.

작위를 최소화하고, 내 본능에 최대한 충실하게 키워보자는 거였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지만, 손자를 항상 진심으로 대하면 저절로 육아법은 습득될 것이며, 손자는 결국은 잘 자라게 될 것이라는 나만의 믿음이 있었다.

손자가 서울서 시골의 내 집으로 내려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이는 자연스런 육아에 대한 내 생각을 강고하게 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항상 나와 아이 엄마 사이에서 잠을 자는 2년생 망울이의 젖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잭 러셀 테리어 계통으로 짐작되는 망울이는 감성이 뛰어난 개다. 20미터쯤 밖에서 나는 미세한 냄새도 맡을 정도로 후각이 예민하고 귀도 기가 막히게 밝다.

물론 이 녀석의 ‘가상 임신’ 증상을 출산, 그리고 딸과 손자의 우리 집 체류와 연계시킬 과학적 근거를 나는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불을 돌돌 말아서 (새끼를 키울 요량으로) 굴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고, 실제로 젖도 흘러나오는 게 가상 임신만큼은 확실하다.

개가 주인이 임신하면 행동이 달라진다는 ‘증언’은 인터넷 상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하다. 일부 동물행동학자들은 임산부 특유의 체취 같은 걸 느껴서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손자가 자지러지게 울 때 망울이는 안절부절 당황한 듯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평소 매우 공격적인 망울이가 신생아 손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편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적과 아군을 유별나게 구별하는 망울이가 어떻게 손자를 식구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개가 아니더라도 또 특별히 교육받지 않아도 세상의 어미들은 본능적으로 새끼에게 최선의 케어를 준다. TV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알 수 있지만, 때로는 눈물겨울 정도로, 또 때로는 신기할 정도로 어미들은 새끼를 잘 돌 본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젖먹이들에게 온 마음을 쏟다보면 육아는 상당부분 저절로 되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손자가 중환자실 신세를 진 뒤, 딸이 병원에서 울고불고 소란을 벌인 것을 내 새끼라서가 아니라 본능차원에서 나는 이해한다. 의료진 개개인과 논쟁을 벌인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무슨 몸싸움 같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신생아 돌보기에 집중해야 할 간호사나 의사들 옆에서 큰 소리로 울어댐으로써 수분 동안이나마 그들의 업무에 방해가 됐던 데에 대해서는 물론 사과했어야 마땅했을 일이다.

사람의 본능이라는 건 물론 여느 동물 수준은 아닐 것이다. 사위가 제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크지 않은 목소리로 철저히 존댓말을 하며, 그러나 의사가 즉답을 내놓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질문에 질문을 꼬리를 물고 해댄 일은 의료진 입장에서 불쾌할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제 아내가 자리를 비킨 틈을 타서 의사에게 별도로 사과하고 이해를 구한 건, 순발력 있는 일련의 고도의 본능으로 평가해 줄만도 하다. 더 큰 소란으로 번지는 걸 막을 수 있었으니까.

젖먹이들을 키우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을 것이다. 산모도 못되는 주제에 어줍지 않은 얘기지만, 나는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해 엄마가 매번 최고의 답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갓난쟁이를 두고 엄마만큼 본능에 충실한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안 생겨 신생아를 입양했다가 이후 임신에 이른 두 쌍의 부부를 알고 있다. 이 경우 신생아를 키움으로써 형성된 모성이 임신에 도움을 준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위나 딸처럼 산후 조리원 같은 곳에서 소정의 교육 같은 걸 받지 않았지만, 손자를 잠들게 하고 수유하는데 이렇다 할 어려움을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조물주가 있다면, 할아버지에게도 일정 수준의 육아 본능을 정도는 유지하도록 허여하지 않았을까?

손자는 중환자실로 가고 집안은 비상

“지금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응급실로 갔는데,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주었어요.”

지난 9월 하순, 사위로부터 손자가 병원에 입원 조치 됐다는 말을 들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이틀도 못 된 아이가, 출생 다음 날 사돈과 아이 엄마와 서울에 올라가 봤을 땐 너무도 건강해 보였던 ‘핏덩어리’가 입원이라니, 그것도 중환자실에.

직감적으로 ‘큰일이 있구나’ 생각했지만, 짐짓 차분하게 응대했다. 형제들은 물론이고, 친인척 또 주변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아이가 세상 빛을 보기 무섭게 중환자실 신세를 진 경우가 없어 적잖이 불안했다. 하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치자면, 신생아 아비인 사위가 더 할 것이기 때문에 나라도 냉정함을 유지해야 했다.

“혈변이 계속 나와요. 병원에서는 하루 두어 번씩 연달아 검사하고 또 피를 뽑아 체크하고 있는데 원인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리나 봐요.”

생물학 계통을 전공한 사위는 상당히 소상하고 정확하게 중환자실에 입원한 손자의 상태와 의료진의 보살핌 등을 10~20분 단위로 전해 왔다. 사위는 일터에도 나가지 못하고 중환자실과 제 처가 입원한 조리원을 왔다 갔다 하며 나에게 문자메시지로 실황 중계하듯 충실히 ‘보고’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이삼일쯤 지났을까? 손자의 상태는 그때까지도 이렇다 할 호전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혈변은 계속됐고, 황달은 더 심해져 신생아에게 흔한 수준을 넘어서 자못 심각한 편이라는 것이었다.

의료진은 여전히 혈변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위가 전하는 주치의 말에 따르면, “산모의 피를 흡입한 듯한데, 검사가 잘못됐는지 혈변 속 피가 신생아의 혈액인 걸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사태가 그쯤 되니 시골에 가만히 앉아서 사위로부터 얘기를 전해 들을 수만은 없었다. 손자가 입원한 뒤 사흘 만에 아이 엄마와 함께 서둘러 다시 상경했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 2차례로 제한돼 있었는데, 사위의 안내로 들어가 보니 손자는 인큐베이터 비슷한 장치에 치렁치렁 몇 가닥의 줄을 주먹만 한 몸 여기저기에 단 채로 잠들어 있었다.

면회를 끝내고 병원에서 멀지 않은 조리원에서 숙식을 하던 딸을 찾았다. 외견상은 산모치고는 건강했지만, 딸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접견실에 자리잡은 딸은 몇 마디 입을 떼기 무섭게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딸은 아주 예민해진 상태로, 좀 과장하면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걱정 될까 봐 사위가 우리에게 일부러 알리지 않았는데, 딸이 병원에서 의료진들에게 큰소리를 치는 등 ‘소란’을 벌였다고 한다.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딸이 훌쩍이며 이 얘기 저기 얘기를 입에 담는데, 그걸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아이 엄마도 덩달아 눈물을 훔쳤다.

이쯤 되면 사실 내 처지는 확실해지는 것이다. 내가 신경 써야 할 대상이 신생아인 손자 1명에서, 딸, 사위, 아이 엄마까지 4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사위가 귀띔하길, 병원에서 의료진에게 좀 무례할 정도로 따지고 들었는데, 그건 그들이 특별히 잘못해서가 아니라 제 아내를 다독일 심정으로 일부러 ‘쇼’를 했다는 것이었다.

사위의 깊은 속이 참으로 가상했다. 못 나가는 일터 눈치 보느라, 중환자실에 있는 제 새끼 틈나는 대로 살펴보느라, 조리원에서 넋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며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제 아내 달래느라 온종일 몸도 마음도 바쁠 텐데. 그러느라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던 사위를 보고 있자니 그러다 곧 병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평소 차분하던 아이 엄마는 서울서 손자와 딸 면회를 끝내고 시골집으로 돌아오자, 얼굴에 그늘이 완연했다. 딸을 안심시키려고 애써 불안한 내색을 감췄는데, 몸만 성할 뿐 이튿날부터 깨어나서 잠들 때까지 하루 종일 불안·근심 모드였다. 아이 엄마 역시 마음의 병이 생긴 것이었다. 아이 엄마와 딸을 달래기 위해 없는 말도 지어내고, 견강부회도 하고, 일부러 살짝 말을 비틀어 전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런저런 과학 논문을 읽어내는 게 한때 밥벌이 가운데 하나였던 나는 인터넷을 통해 열심히 손자의 병증과 관련됐을 만한 주제의 국제 의학 논문들을 뒤졌다. 하루에 20편 이상을 쓱쓱 읽어 치운 날도 있었다.

주로 밤에 침침한 눈으로 논문을 읽고 나서는 아이 엄마나 딸이 들으면 충격을 받거나 할 내용은 빼고, 손자가 무사히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할 만한 근거가 될 내용만을 주로 전했다. 부정적인 대목들은 사위와 나 둘이서만 공유했다. 예를 들면, 장중첩이나 장세포 괴사가 원인일 경우 신생아의 배를 갈라야 혈변을 궁극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등의 얘기는 삼갔다.

내 딸이라서 두둔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막 출산한 산모들은 이런 상황에 놓이면 평소처럼 침착할 수 없을 게 당연할 것이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남자들의 눈으로 산모들을 재단할 수는 없다. “입원을 시키면 장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번지르르한 말을 아무리 늘어놓는다 해도, 출산 직후 타의에 의해 제 새끼와 떨어지게 된 엄마가 ‘미치는 걸’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리원 면회실에서 본 딸은 짐승의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었다. 애가 타서 막 낳은 제 새끼를 찾아 헤매는 짐승 어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중간중간 제정신이 돌아와,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게 훨씬 낫다”고 설득하면 잠깐 고개를 주억거리다가도 이내 우울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채혈한다고 발바닥에 바늘을 꽂을 때 죽어라 우는 걸 보라고?”

‘흔히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을 하는데, 이런 얘기를 할 때 정말 딸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좀 뜬금없고 생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세월호 엄마들의 마음을 산모들보다 잘 이해할 사람도 드물 듯하다. 실제로 딸은 사회문제나 세상사,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친정집에 돌아온 뒤 어느 날 “세월호 엄마들의 마음을 그 전과는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하기도 했다.

엄마들을, 때로는 여성들을 싸잡아 ‘감성적’이라는 말로 은근히 낮춰보는 예가 적지 않다. 섬세함이니, 여성적이니, 감성적이니 하는 말이 문자 그대로 좋은 의미로 쓰일 때도 있지만, ‘남성들이 합리적이니 어쩌니’ 하며 대비시킬 땐, 감성이 이성보다 한 수 밑이라는 전제를 알게 모르게 바닥에 깔고 들어가는 것이다. 비약일 수 있지만, 감성에 호소하는 게 직업인 연예인들을 ‘딴따라’라는 식으로 부르는 데는 이성이나 합리성을 중시하는 과학자들이나 법률가들보다 그들이 열등하다는 인식이 작용한 탓은 아닐까?

사람은 놀랄 만큼, 때로는 자신마저도 속일 만큼, 감성적 혹은 감정적인 동물이다. 단적인 예로 선거 판세를 결정짓는 게 정책보다는 유권자들의 감성일 때가 더 많지 않은가. 정치인들이 걸핏하면 보복이니 분풀이니 하는 용어를 동원하는 것도 사실은 감성에 기대보려는 것이다. 감정이나 감성은 동물 중 가장 이성적이라는 인간의 사고를 좌지우지하는 요체일 때가 많다.

신생아는 두말할 나위가 없고, 산모 역시 감성이나 감정에 의한 지배를 유달리 많이 받게 돼 있다.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가끔 들었던 얘기 가운데 ‘세 살 되기 전 아이들은 세상을 다 안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특정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이와 유사한 얘기들이 구전됐을 것으로 짐작한다. 전통사회에서 그만큼 보편적으로 퍼졌던 얘기일 터인데, 이는 신생아들이 매우 ‘섭리적’인 존재임을 암시하는 말로 나는 풀이한다.

신생아 손자가 중환자실 신세를 지고 있었지만 ‘끝내 큰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 스스로 되뇔 수 있었던 건 섭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자가 세상에 나온 건, 아니 세상의 모든 아가들이 엄마 배 밖으로 나온 건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한 존재여서일 것이다. 과학적 잣대로만 따지자면, 태아들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을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은 사산하지 않고 햇빛을 본다.

감성과 이성 중 섭리에 가까운 쪽은 아무래도 감성일 것이다. 진실한 감정은 고차원의 이성을 끝내는 능가한다. 손자가 아니라도 무릇 세상의 생명은 진정한 감성과 감정으로 대해야 하는 존재들일 것이다. 아이 엄마와 나 둘만이 사는 시골집에 두어 해 전 태어난 지 한 달도 못 되는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와 우리는 이후로 세 식구가 되었다. 우리는 반려견 ‘망울이’와 함께하며 진실한 감성 혹은 감정은 개든 사람이든 삶의 고갱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장인어른, 무슨 일이 있다면 더 공부하는 것 포기하고 국내에서 자리잡아 보겠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면회를 앞두고 사위가 조용히, 그러나 이미 각오한 듯한 표정으로 내게 결심을 밝혔다. 좋은 조건에 외국으로 취업형 유학을 나가는 게 거의 확정적인 단계였는데, 제 아들에게 장애가 있다면 미련 없이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더 없는 진심을 담은 얘기였다. 나는 사위의 결심에 답하는 대신 윗니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할아버지도 손자 잘 키울 수 있다

’10시 분유 120ml, 1시 10분 모유 80ml 묽은 변 많이, 3시 30분 모유 60ml 묽은 변 많이, 6시 30분 분유 60ml.’

며칠 전 손자 돌보기 기록이다. 딸한테서 생후 50일 된 손자를 밤 10시에 넘겨받아서, 이튿날 오전 9시 딸 품에 되돌려 줬다. 정확히 11시간 동안 4번 잠에서 깨어나, 수유하고 기저귀를 갈아줬다. 분유는 타서, 모유는 미리 짜둔 걸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물에 미적지근하게 데워서 먹였다.

“아빠는 어떻게 나보다 애를 더 잘 봐”

손자가 내가 사는 공주의 시골집으로 내려온 건 지난 10월 추석 연휴가 끝난 뒤였다. 9월 19일에 출생했는데,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 신세를 7박 8일 져야했다. 이후 약 1주일은 산후 조리원에서, 또 닷새 정도는 제 엄마아빠 집에서 보낸 뒤 외할아버지인 내 집으로 온 거였다.

11월 14일 기준으로 손자는 제 엄마는 물론이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대략 달포 가량을 보낸 셈이다. 요즘 아이 울음소리 듣기 어려운 건 시골만이 아니지만, 내 착각인지 온 동네가 손자 울음으로 ‘활력’이 생긴 느낌이다.

친정집 산후 조리는 오랜 우리 사회의 전통이다. 그 점에서 딸과 신생아 손자의 외갓집 체류는 그다지 남다를 게 없다. 다른 친정들과 혹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외할아버지인 내가 있어 별 고민 없이 친정을 산후 조리 거처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외할머니는 공주와 인접한 대전에 직장이 있는 탓에 하루 종일 집에 붙어 있을 수 없는 반면, 나는 반백수인 까닭에 낮에는 물론이고 오밤중에도 도우미로 활용이 가능한 ‘결정적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어떻게 나보다 애를 더 잘 봐.”

3주 전쯤이던가. 손자를 안아 어르고 있는데, 딸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하는 거였다. 응응 건성으로 답하며 “네가 말이 엄마지, 언제 애기를 키워봤냐”고 속으로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딸의 칭찬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60세가 목전인 할아버지가 신생아 손자 육아를 딸과 반분한다니, 주변에서 믿지 않는 눈치들이었다. 그러나 나의 과거 이력을 좀 아는 직계 가족들이나 형제들, 그리고 친한 친구들은 ‘예상한 결과’라고들 했다.

약 20년 전 초등학생이던 딸과 아들을 외국에 데려가 6년 넘게 혼자 키운 전력은 물론이고, 2010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인 여자 조카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년 반 동안 전담 양육했던 등, 나는 애 키워본 경력이 좀 되는 편이다. 시쳇말로 로망까지는 아니었지만, 20대 중반 첫 직장을 가진 직후부터 나는 애 키우기가 내 체질에 맞는 일이라는 걸, 그러니까 아주 일찌감치 알아챘다.

살림 체질과 관련해 이런 일도 있었다. 할머니부터 딸 아들까지 4대 열 식구가 한 집에 살아야 했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서울 생활 시절이었다. 한번은 농반진반으로 “내가 집에서 아이를 키울 터이니, 당신이 나가서 벌어 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아이 엄마에게 제안한 적이 있었다.

열 식구의 생계가 결정적으로 나의 월급에 달려 있어서, 그에 따른 직장생활의 압박감이 한층 더 컸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직장 업무는 더 없이 적성에 잘 맞았지만, 아이 키우는 처지가 훨씬 부러웠다.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집 안팎에서는 사실상 비웃음만 샀다. 식구들도 직장동료들도 내가 이런 얘기를 할 때면 “애 키우는 게, 또 살림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한마디로 가소롭다는 태도들이었는데, 외국에서 무사히 6년 넘게 두 아이를 키워 낸 뒤에는 다들 보는 눈이 180도 달라져 있었다.

“할머니”라는 소리,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할머니!”

그런대로 내 성정을 잘 파악하고 있는 현재의 시골 동네 한 이웃은 거의 하루 종일을 손자 보기에 매달려 있는 나를 보면 이렇게 부르곤 한다. 직장 시절이든 반백수인 지금이든, 호칭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지만, 할머니라고 불러주니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수십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를 유달리 끔찍하게 아꼈던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단어 엄마, 그 엄마보다도 때론 앞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푸근한 단어가 할머니가 아니던가. 나는 정말 될 수만 있다면 엄마도 되고 할머니도 되고 싶다.

내 핏줄의 내 손자니까 할머니로 불리고 싶다든지 하며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니다. 30년 전 딱 이맘때 지금의 손자를 낳은 딸을 안고 수유할 때는, 털어놓건대, 하나의 생명이 온 우주와 다르지 않음을 몰랐다. 내 손자만 어디 그럴까. 세상의 모든 신생아들이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얼마 전인가, 딸은 동네 산책에 나섰고 남쪽으로 난 거실 창으로 가을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져 들어오던 날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잠든 손자를 안고 있는데, 절로 눈물이 나는 ‘귀중한’ 체험도 해봤다. 내 팔에 안긴 게 내 손자가 아니더라도 아마 눈물이 났을 것 같다. 초로의 남자들한테 드물지 않은 불안정한 정서가 큰 몫을 했겠지. 그러나 나는 그 같은 경험을 돈오돈수와 같은 순식간의 깨우침으로 받아들인다.

50일 가량 신생아 손자를 돌봐오면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어깨며 특히 양 팔목이 뻣뻣해지는 등 불편함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들과 딸을 키웠을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 후다닥 지나가버릴 손자의 신생아 시절을 함께 할 수 있는 건 아무나 받지 못하는 복에 다름 아니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일인가.

출산율 저하로 말이 많은 요즘, 손자 복에 겨운 처지에서 이중 잣대를 드러내 놓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애 낳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밝히곤 했다. 한국과 같은 양극화 사회에서 지금 태어나는 신생아들은 확률적으로 본다면 70% 아니 80%가 ‘일벌’의 운명을 피해가기 힘들다. 공식적인 신분제 사회는 아니지만, 사회 저층에서 낮은 임금 노동 등에 시달리며 쪼들린 한 평생을 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과 달리, 아가들 그 자체는 더 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들이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주며, 때로는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을 통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준다. 나의 손자처럼 태어나기 무섭게 제 어미 품에 안기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바늘에 꽂혀 연명해야 했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이번 가을 한국 테니스 새 기록 세워질 수도

한국 테니스 랭킹 1위 정현(세계 49위)이 24일 새벽(한국시간) 열린 윈스턴-세일럼 오픈 16강 전에서 노장 쥘리엥 베네토(프랑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진행되는 이 대회에서 정현은 한층 차분한 경기 운영으로 첫 세트를 6-4로 이기고, 두 번째 세트 1-1에서 상대가 부상으로 기권, 8강에 안착했다.

정현의 이번 8강 진출이 관심을 끄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투어 대회에서 지금까지 최고 기록인 4강을 넘어서 결승 진출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28일 개막하는 올해 마지막 그랜드슬램 대회인 유에스 오픈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도 있어서이다.


세계프로테니스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된 차세대주자 연말결산대회 메인 화면.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정현선수이다. ⓒ 김창엽
정현은 지난 5월 독일에서 열린 BMW 오픈에서 4강전에 오르는 수확을 거둔 바 있는데, 이번에는 이를 넘어서 결승 진출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8강 진출자 중 정현이 속한 그룹 4명 가운데 최고 시드 선수는 스티브 존슨(6번 시드, 세계 46위)으로 랭킹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얼마든지 해볼 수 있는 상대이다.

정현은 4강에 오르기 위해 먼저 8강전에서 다미르 줌허르(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넘어서야 한다. 다미르 줌허르는 신장 175센티미터의 비교적 단신으로 빠른 발이 주무기이다. 하지만 정현은 수비폭이 넓고 받아치기에 능해, 질 가능성보다는 이길 확률이 높은 편이다.

만일 줌허르를 누르고 정현이 4강에 오른다면 스티브 존슨-카일 에드먼드(영국) 전의 승자와 결승 진출을 두고 맞붙게 되는데, 둘 다 정현에게는 만만치 않은 상대이다. 다만 존슨과는 세계 랭킹에서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고, 에드먼드는 랭킹에서 정현 보다 아래여서 충분히 승산 있는 경기가 될 듯 하다.

정현은 이번 대회 8강에 오르기까지 어처구니 없는 실수도 적지 않았고, 서비스 더블 폴트도 평소보다 많은 등 컨디션이 썩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해에 비해 한층 여유있고 자신감 있는 경기자세로 매번 승리를 이끌어 냈다.

이에 따라 이번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두면 28일 개막하는 유에스오픈 대회 때쯤은 경기 리듬이 오히려 상승세를 탈 수도 있다. 특히 이번 윈스턴-세일럼 대회에서 결승전에 오르고, 이어지는 유에스오픈에서 3회전 정도만 진출한다면 정현은 한국 선수로는 이형택의 세계 최고 랭킹 기록이었던 36위 이상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상태이다.

이와 함께, 정현이 이번 대회와 유에스오픈에서 선전할 경우 세계프로테니스협회(ATP)가 올해 처음으로 도입한 만 22세 이하 차세대(NextGen)선수들의 한해 결산 파이널 대회(11월 이탈리아 밀라노) 진출도 한층 유력해진다. ‘넥스젠 파이널스’로 명명된 이 대회는 22세 이하 선수중랭킹 8위까지를 뽑아 라운드 로빙 방식으로 치러진다. 정현은 8월 24일 현재 차세대선수 랭킹 8위로 턱걸이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