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나달과 꿈의 한판 승부벌인다

정현 선수가 바르셀로나 오픈에서 살아있는 전설 라파엘 나달과 마침내 맞붙게 됐다. 주초 오마이뉴스를 통해 8강전 대결 가능성을 점쳐 본바 있는데 실현된 것이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19847&CMPT_CD=SEARCH).

정현은 한국시간으로 28일 새벽, 8번 시드의 알렉산더 츠베레프를 말 그대로 6-1, 6-4로 일축했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엄중한 대통령 선거 국면만 아니라면, 한국의 열성 테니스 팬과 관계자들에게 이만한 뉴스는 흔치 않다.

정현과 나달의 8강전은 한마디로 한국 테니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세계 남자테니스협회(ATP)가 ‘공식’ 지목한 것처럼, 정현은 세계에서 열손가락에 안에 드는 젊은 선수, 즉 ‘차세대(NEXGEN)’ 주자이다. 나달은 더 이상의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테니스 역사상 최고 자리를 놓고 페더러를 넘보는, 적어도 수십 년 어쩌면 100년여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이다.

정현은 한국 랭킹 1위지만, 최근 1~2년 사이의 동향만 본다면 오히려 국내에서 저평가되고 있다. 세계 테니스 관계자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서 더 큰 주목을 받는 실정인 것이다. ATP 인터넷 홈페이지에 하루가 멀다 하고 정선수가 빈번한 뉴스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게 단적인 증거이다.

정현이 8강에서 나달과 맞서기까지는 우연이나 운이 따라준 것도 아니었다. 16강전에서 완파한 츠베레프는 정선수보다 1살 어린 19세로 “향후 수년 안에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이 유력한 실력을 갖췄다”는 전문가들의 이구동성 평가를 받고 있다. 그에 앞서 꺾은 필립 콜슈라이버는 페더러나 나달이 종종 ‘퀄리티 플레이어’라고 칭찬하는 수준급 기량을 갖춘 선수이다.

테니스계에서 퀄리티 플레이어란 기량 게임 감각 등이 세계 정상 선수와도 맞붙는데 부족함이 없는 선수를 뜻한다. 실제로 콜슈라이버는 흙 코트 대회에서 다수의 우승 경력이 있으며, 흙 코트 대회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전성기 기준으로 세계 랭킹 10위 안에 너끈하게 들 수 있는 선수이다.

정현의 이번 바르셀로나 오픈 선전은 어느 정도는 예견된 것이었다. 받아치기, 즉 리턴에 뛰어나고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대신 게임 운영 능력, 예측 등에서 좋은 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흙 코트는 하드 코트나 잔디 코트와는 다른 구장 특성으로 인해 이변이 속출하는 구장 표면으로 유명하다.

공이 느리고 바운스가 불규칙한 까닭에 정통적인 스윙 폼을 구사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승점을 올릴 수 있다. 정현 선수와 나달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스트로크 궤도나 자세가 비정통적이라는 것이다. 또 두 선수 모두 받아치기에 능하다.

수비가 좋은 선수들이 유리한 까닭에 흙 코트에서는 하위 랭킹이 상위 랭킹 선수를 꺾는 이른바 ‘업셋’(upset)이 빈번하다. 이번 바르셀로나 오픈 16강전 8경기 가운데 정현 선수가 츠베레프를 물리친 것을 비롯해 모두 5경기에서 업셋이 일어났다. 업셋을 피하고 살아 남은 선수는 나달을 필두로 현 세계 랭킹 1위 앤디 머레이, 20세 초반 그룹 선수 중 가장 랭킹이 높은 도미닉 팀 등 3명에 불과했다.

정현의 4강 즉 준결승 진출은 객관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나달은 테니스 역사상 이론의 여지가 없는 ‘흙 코트의 제왕’인데다, 올 들어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는 등 최소한 흙 코트에서 그를 꺾어볼 수 있는 선수는 현재 세계적으로 한두 명이 있을까 말까 한 상태이다.

그러나 정현이 나달을 이기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론 정현의 승리 확률이 극단적으로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나달은 올 들어 호주 오픈을 시작으로 가장 강행군하고 있는 선수이다. 지난 주말 몬테 카를로 마스터스 대회 우승, 또 그 이전 마이애미 오픈 결승 진출 등 지난 3개월 남짓 기간 동안 톱 선수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게임을 소화했다.

나달이 그럴 확률은 떨어지지만 다음 달 말 열리는 프렌치 오픈까지 빡빡한 일정을 감안해 정현을 상대로 공격을 서두른다면, 정현은 한 세트 정도는 빼앗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흙 코트는 점수를 얻기 위해 강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강력한 서비스 한두 방이나 전광석화와 같은 포핸드 스트로크로 스코어를 올리기가 쉽지 않다. 상대 코트로 공을 한 번 더 넘기는, 이른바 ‘원 모어’(one more) 방어력을 보이는 쪽에 승산이 따르곤 한다.

승리를 기대하기 쉽지 않지만, 정현은 이번 나달과의 8강 시합 그 자체를 통해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경기보다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게임 호흡을 제대로 읽고, 잃을 게 없다는 느긋한 자세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지더라도 선전의 박수를 받을 터이다.

나달과의 8강전은 정현의 테니스 인생에 커다란 하나의 이정표로 부족함이 없다. 한때 세계 랭킹 50위 안에 반짝 진입했다가 거듭된 추락으로 100위 권 밖으로 벗어난 게 바로 엊그제 일이다. 랭킹을 유지하고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서, 예를 들면 흙 코트에 시즌 중 어느 정도 자원을 배분해야 할지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얘기이다.

정현과 나달의 8강전은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한국시간으로 28일 자정을 전후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Posted in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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