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더러의 과학을 알면 테니스가 보인다

정현 선수의 선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눈길을 끌었던 2018 호주 오픈이 지난 28일 페더러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페더러는 여간해서는 깨기 힘든 그랜드 슬램 20회 우승이라는 문자 그대로 금자탑을 쌓았다.

페더러의 이번 대회 우승은 그의 남다른 운동 신경이나, 대진운 등의 덕만을 본 게 아니다. 장비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운동이 그렇지만, 테니스는 과학과 기술의 지배를 받는 대표적 스포츠이다.

페더러를 테니스 역사상 빼어난 여러 선수들 가운데 그저 하나로 봐서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페더러의 테니스 과학은 여타의 톱 플레이어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가 한둘이 아닌 까닭이다. 아마추어 테니스 동호인들은 물론 선수들까지도 눈 여겨 봐야 하는 ‘페더러의 과학’을 몇 가지만 간추려 소개한다.

페더러는 초보 그립?

테니스는 골프와 함께 그립이 가장 중요한 운동으로 지목된다. “자루를 그까짓 것 어떻게든 잡든 무슨 차이가 크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립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팔뚝 어깨 등의 회전까지도 달라지는 게 보통이다. 한마디로 전혀 사소한 차이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효율적인 테니스 그립은 남자 프로선수를 기준으로 할 때 세미 웨스턴으로 수렴되고 있다. 국내외 아마추어들도 그 영향으로 최근에는 세미 웨스턴 그립을 주로 잡는 경향이 있다.

반면 페더러는 전통적이며 테니스 입문 때 주로 잡는 이스턴 그립을 쥐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웨스턴 그립을 하게 되면 팔뚝 안쪽이 하늘로 향하며, 이스턴은 그냥 막대기를 쥐듯 일상적으로 라켓을 쥔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페더러는 엄밀히 말하면 이스턴과 세미 웨스턴의 중간쯤 형태로 공을 칠 때가 많다. 높은 공 낮은 공 가릴 것 없이 이스턴 계통 그립은 공을 자연스럽게 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페더러가 받아치기에 능하고, 상대에게서 넘어온 공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프로선수들이 이스턴을 제쳐 두고 세미 웨스턴을 선호할까? 세미 웨스턴은 스핀과 스피드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에 가장 유용한 그립인 탓이다. 이스턴보다 반응이 조금 느린 문제는 거듭된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 반면 슬라이스나 낮게 깔려온 볼을 치는데 세미 웨스턴은 이스턴보다 불리하다.

페더러가 전광석화처럼 볼을 빨리 잡고 기민하게 상대 진영으로 넘길 수 있는 데는 이스턴 그립의 기여가 적지 않은 것이다.

와이퍼 스윙의 주역

요즘 프로 테니스계에서는 대략 2000년 이전과는 달리 포핸드 기준으로 와이퍼 스윙이 널리 확산돼 있다. 영어 명칭은 ‘windshield wiper’ 스윙인데, 즉 마치 자동차의 유리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닦는 와이퍼와 유사한 궤적을 갖고 있다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와이퍼 스윙과 클래식 포핸드 스윙의 궤적 차이는 테니스 문외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다. 와이퍼 스윙은 전체 스윙 궤적 중 라켓 전면이 상대 선수를 향하는 구간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반면 스윙 준비동작이기도 한 라켓을 뒤로 빼는 이른바 테이크 백은 간결한 편이다.

와이퍼와 클래식 두 스윙의 보다 확실한 차이는 흔히 말하는 피니시 동작에서 목격할 수 있다. 클래식 스윙은 오른손잡이의 경우 왼쪽 어깨 위쪽에서 끝나는데 반해, 와이퍼 스윙은 왼쪽 가슴을 가로 질러 나가며 스윙이 끝을 맺는다.

와이퍼 스윙은 이른바 오픈 스탠스 즉, 공을 치는 선수의 가슴이 상대 코트를 향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어 떠오르는 공을 빨리 잡아 치기 쉽다. 그만큼 공격적으로 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와이퍼 스윙이 널리 유행할 수 있었던 데는 최근 십 수 년 사이에 라켓 성능이 크게 향상돼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도 포핸드를 구사할 수 있게 된 덕이 크다. 와이퍼 스윙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 클래식 스윙이 일종의 선(lined) 스윙이었다면, 와이퍼 스윙은 점(point) 스윙이라는 사실이다.

클래식 스윙에서 포핸드 스트로크는 라켓 면을 지면과 90도 상태로 마치 벽처럼 세워 유지한 상태로 철길 따라 가듯 앞으로 죽 밀어내는 방식이었다. 반면, 와이퍼 스윙은 탁구처럼 공을 보내려는 방향과 순간적으로 직각되게만 공을 라켓 면에 맞추는 식이다.

과거 테니스 스윙에서 탁구 스윙 흉내는 금물이었다. 하지만 페더러를 위시해 여러 선수들이 구사하는 현대 포핸드 와이퍼 스윙은 보다 탁구와 유사한 면이 있다. 나달도 페더러와 함께 와이퍼 스윙을 경기중 자주 구사하는 대표적인 선수이다. 조코비치는 또 와이퍼 스윙과 클래식 스윙을 가장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드라이빙 톱 스핀의 귀재

스트로크의 기본은 드라이빙이다. 동호인들의 초보 시절 레슨을 받을 때 치는 스트로크가 바로 드라이빙 볼이다. 톱 스핀 볼은 나달로 대표되는데, 공이 큰 포물선 궤적으로 그리고 날아가 지면에 닿은 뒤 높게 튀어오르는 특징이 있다.

드라이빙과 톱 스핀의 두 가지 특징을 절반쯤 가진 게 바로 드라이빙 톱 스핀이다. 드라이빙 볼을 닮아 상대 진영 지면에서 한 번 튀긴 뒤 빠르게 지면을 박차고 나감과 동시에 톱 스핀만큼은 아니지만 사뭇 위쪽으로도 많이 튀어 오른다.

페더러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페더러의 스트로크가 끝줄이나 옆줄을 벗어날 것 같으면서도 잘 벗어나지 않고 뚝 떨어지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드라이빙과 함게 톱 스핀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페더러의 드라이빙 톱 스핀은 상체의 부드러운 회전과 함께 공을 직각으로 맞추지 않고 85~90도 각도로 라켓 면을 미세하게 엎어서 친다는 특징이 있다. 페더러는 드라이빙 톱 스핀을 치기 때문에 마치 플랫 볼처럼 네트를 비교적 살짝 걸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페더러 포핸드의 네트 클리어런스는 대략 90센티 정도이다. 네트로부터 공중으로 90센티쯤 간격을 두고 상대로 코트로 넘어가는 것이다. 반면 나달의 경우 네트 클리어런스가 1미터50센티 일 정도로 훨씬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드라이빙 톱은 상대가 맞받아치는 타격 시점을 잡기가 가장 까다로운 스트로크 볼에 속한다. 페더러가 스트로크 랠리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드라이빙 톱 스핀으로 정평이 난 또 다른 선수는 수년 전 유에스 오픈을 우승한 후안 마틴 델 포트(아르헨티나)인데, 그는 큰 키와 긴 리치로 가장 빠르고 무거운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다만 그의 약점은 드라이빙 톱 볼을 치면서 페더러와 달리 상체를 십분 이용하기 보다는 팔목 사용이 많은 것이다. 그는 뛰어난 테니스 자질을 가졌으면서도, 팔목 부상으로 수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다.

페더러는 이처럼 다른 선수에게 흔치 않은 그립과 포핸드 스트로크, 드라이빙 톱 스핀 볼을 갖고 있어, 경기를 공세적으로 풀 수 있고, 이는 경기 시간 단축으로 이어져 체력을 아끼곤 한다. 이는 그가 우리 나이 38세로 테니스 선수로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기량을 유지하며 장수하는 비결로 꼽힌다.

Posted in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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