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어디로 먹으러 갈까?

시골서 혼자 일해보니 직장 식사시간이 그리워졌다
“제 차는 너무 지저분한데요. 창피해요.” “그렇다면, 과장님은 누구 차에 타셔야지?” 지난 수요일 시청의 한 부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58분, 직원들이 막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 의자에서 하나 둘씩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시골에 살다 보니, 왜인지 모르겠지만 면사무소나 시청 같은 관청을 찾아야 하는 일들이 잦은 편이다. 필요한 서류를 시청 담당자 책상에 던지듯 주고 돌아 나오는데,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아~, 내가 직장이 없는 사람이구나.”

직장다운 직장을 마지막으로 다닌 게 2008년이었다. 그 해 하반기 현재 살고 있는 시골에 조그마한 땅을 장만하고, 이듬해 초 바로 집을 지어 이주했다. 중간에 1년 반 정도 다른 나라에 나가 있기는 했지만, 직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2014~2016년에는 아이 엄마의 자영업을 도왔는데, 그것도 틀이 잡힌 직장, 이를테면 일정한 규모를 갖춘 전형적인 회사나 기관의 직원으로서는 아니었다.

올해로 9년째, 업무 형태를 기준으로 하자면 난 프리랜서 신분으로 분류돼야 할 듯 하다. 물론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농업경영체 등록을 했으므로, 농업 경영인으로 볼 수 도 있겠다. 그런가 하면 틈틈이 손이 나는 대로 아이 엄마의 사무도 보조했으니, 사무 프리랜서이기도 했다. 글을 써서 약간의 수입을 올리는 점까지 감안하면 자유기고가이기도 한 셈이다.

시골 살며 하는 일들은 대부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뭐 하세요?”하고 주변 사람들이 물으면, 설명하기가 복잡해 ‘백수’라고 답하는 건, 무엇보다 소속된 직장도 단체도 없이 프리랜서로 지내는 탓이다. 기간이나 시간이 정해져 있는 직장 혹은 직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땅을 파고 내일은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새벽에 가끔은 글도 쓰고 때때로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입에서 단내가 나게 막노동도 한다.

요즘처럼 농사 일이 바쁘게 돌아가는 철이면, 주업은 두말할 나위 없이 농사이다. 이른바 귀농인들 혹은, 주말에 농장을 가꾸는 사람들은 대략 짐작하겠지만, 농사 관련 일들이 노동의 강도로만 따지면 대체로 도시 공사판에서 막노동과 엇비슷하다. 특히 기계나 화학비료 농약 사용을 달가워하지 않는, ‘손으로’ 농법을 고집한다면 더욱 그렇다.

가끔은 일에 쫓기면 점심도 거르는데, 수요일 시청 직원들의 ‘점심 준비 대화’에 옛 시절이 갑자기 유난히 그리워졌던 건 오전 시간 강도 높은 노동으로 배가 무척 고팠던 탓도 있을 것이다.

나 홀로 작업의 동반자 망울이.


사회생활을 직장 출퇴근으로 시작한 건, 1988년 가을이었다. 워낙 성격이 제멋대로라, 속된 말로 태생이 직장인 체질이 아니었다. “부장님 그런 말씀 마세요. 난 좀 있다가 시골로 갈 사람인데요.” 회사원 생활을 시작한지 10년도 못돼 부서장이 업무를 과다 배정하면서, 인사 고과를 거론할 적이면 단칼에 “마음대로 하라”고 쏘아붙이기도 했을 만큼, 직장 그만 둘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니 ‘직장 동료애’ 같은 게 내게는 일체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어제 시청 직원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아스라히 회사원 생활을 할 때 점심 시간들이 그리워지며, 그네들이 부러운 거였다. 생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급여가 나오는 안정된 일터가 있기 때문에, 혹은 손가락 마디마디가 퉁퉁 부을 일이 없는 사무직종 근무자들인 까닭에 그들의 점심 대화에 옛 시절이 떠오른 건 전혀 아니었다.

“동료, 그래 나에게도 동료라는 게 있었지”하는 생각을 시청 직원들의 대화가 불현듯 일깨워준 거였다. 점심 시간을 앞두고 대한민국 어느 직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대화가 새삼 귀에 밟혔던 것은 매사를 혼자 처리하는 프리랜스 업무에 어느 사이엔가 조금은 지쳐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자연을 가까이 하고, 그래도 깜냥에 자연을 닮은 일상을 살아보겠다며 시골 정착을 서둘러 왔는데, 시골에는 동병상련하는 ‘직장 동료’가 없었다. 물론 평생 농사를 지어온 이웃들을 일상적으로 대하고, 귀농인 혹은 귀촌인들을 이따금씩 보기는 하지만 도시에서의 직장 동료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점심 시간 풍경으로 치자면.

시청에 일을 보러 다녀온 건 집 근처에 자영업 사무실을 내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었다. 물론 이번 역시 직원 한 사람도 두지 않는 나 홀로 자영업인데다, 그간의 주업이었던 농사를 손에서 놓는 것도 아니어서 크게 보면 프리랜서로서의 지난 9년 생활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하다.

논과 밭 산으로 둘러 쌓인 시골 마을에서 농사에 더불어 자영업을 겸한다는 게 어떤 모습일지 지금으로써는 상상이 잘 안 된다. 내가 사무실을 내려 하는 점포 바로 옆으로는 미용실, 세탁소, 피아노 교습소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그 곳 주인들과 과거 직장의 동료들처럼 지내게 되려나? 길 건너 농협분소 직원들과 가끔은 점심이나 같이 하게 될까?

사무실 개업 승인이 제때에 나는 게 지금으로서는 우선 바램이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자영업이 시골 생활에 일정 부분 변화를 가져올 것만은 확실하다. 삽이나 쇠스랑, 낫을 부여잡고 작물이나 땅과 대화하는 시간이 아무래도 줄어들 듯 하다. 또 사무실 자영업은 친가, 처가, 외가 등 이른바 ‘3가’의 집사 일도 적당히 물리칠 수 있는 핑계거리가 될 것 같다.

프리랜서로 살아온 지난 9년은 ‘손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3가’의 자잘한 일들이 내 몫으로 떨어지곤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심부름 성 일들이며, 집안 공동의 일들 예를 들면 ‘3가’의 식구들이 먹을 된장이나 간장을 담그는데 어머니의 보조 일꾼으로 나서야 하는 건 항상 내 차지였다.

또 버리자니 아까운 그러나 평소 별로 쓸 일이 없는 도시에 사는 형제들의 너저분한 짐들의 창고 보관도 온전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이었다. 물론 예의 직장 동료 없이 나 혼자서. 오매불망 노래해 온 시골에서의 ‘자유로운’ 삶이, 내겐 없다고 간주해왔던 구속 혹은 속박의 동의어 같은 직장의 동료애를 일깨워 준 건 그러니 아이러니다.

사족이지만, 감히 조언컨대 직장을 갖고 있다면 점심 시간의 정을 만끽들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회사에서의 점심일지라도 말이다. 혼밥 혼술의 매력과 장점도 없지 않겠지만, 훗날 언젠가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소한 대화와 정들이 담긴 시간이 될 터이니.

페더러가 동호인에 보여준 건?

나이 들어도 테니스 실력 ‘업’된다
미국 서부 사막에서 연일 ‘테니스 돌풍’이불고 있다. 올해 첫 마스터스 토너먼트인 캘리포니아 주 ‘인디언웰스'(Indian Wells) 대회에서 파란과 이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 시간 16일 오전 열린 페더러와 나달의 16강전에서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페더러가 싱겁게 나달에게 세트 스코어2-0으로 완승을 거뒀다. 바로 직전에 열린 노박 조코비치와 신세대의 선두주자 닉 키리오스경기에서도 세계 2위 조코비치가 0-2로 완패했다.

새롭게 거듭난 페더러의 백핸드. 나달을 꺾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매년 3월 초중순 열리는 인디언 웰스 대회는 강한 계절풍으로 선수들이애를 먹는데, 올해는 평년에 비해 바람이 유난히 불지 않는 편이었다.헌데 상위권 선수들이 초반 줄줄이 짐을 싸고, 준결승 혹은 결승에서 맞붙어야 할만한 기량을가진 선수들이 16강전이나 그 이전에 맞붙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페더러와 나달은 올해 첫 그랜드 슬램 대회인 호주 오픈 결승에서 만나 페더러가 세트 스코어 3대2로 신승을 거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두 선수의 상대 전적에서는 이 경기 전 나달이 여전히 23승12패로 압도적 우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16일 페더러 나달 경기가 있기 전,전문가들은 어느 쪽이 이기든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헌데 페더러는 첫 세트 6-2, 두 번째 세트 6-3으로 한 시간 남짓에 걸쳐 손쉽게 나달을물리쳤다.

스카이 스포츠 채널의 영국인 해설자는 경기 중 “(만)35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발전하는 원핸드 백핸드 기술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스포츠 채널ESPN 분석가는 “그간 나달의 승리 원천이었던 (취약한) 페더러의 백핸드가 반대로 나달에 대한 공격 무기가 됐다”고 평했다. 나달 자신 역시 경기 후 인터뷰에서 “페더러의 리턴에 답을 내놓을수 없었다”고 상대의 받아치기를 칭찬했다.

전문가들의 이 같은 분석은 30대 이상의 베테랑 프로선수들은 물론중장년 테니스 동호인들에게도 귀가 솔깃한 얘기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우리 나이로 37세인 결코 젊다할 수 없는 페더러가 여전히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그 것도 한물 간 것으로 치부되곤 하는 한 손 백핸드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경기력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미래의 1위로 가장 유력하다는 키리오스.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를 이미 한번씩 꺾은 바 있다.


국내 중장년 테니스 동호인들의 절대 다수는 한 손 백핸드를 구사하고 있다. 페더러백핸드 최근 기술적 진보의 핵심은 공을 반 박자 혹은 한 박자 빨리 잡아 치는 것이다. 왼손잡이 나달은역대 최강으로 평가되는 톱스핀으로 페더러의 한 손 백핸드를 크로스로 집중 공략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페더러는 베이스라인에 가까이 붙어 나달의 백핸드쪽 톱스핀 공을 빨리 잡아챔으로써 그 동안보다 최소 30센티 이상 지면에서 낮게 공이 뜬 상태에서 나달에게 리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페더러는 이와 함께 경기 후 수년 전 헤드 면적이 커진 라켓으로 바꾼 것이 백핸드를 빨리 강하게 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덧붙였다.

페더러는 기존에 사용해 오던 헤드 면적 약 580평방 센티미터 라켓을 2014년부터 포기하고, 632평방 센티미터의 라켓으로 바꾼 바 있다. 페더러는 “기존 라켓은 슬라이스와 포핸드 스트로크에서 강점이 있었으나, (현재 사용하는) 헤드 사이즈가 큰 라켓이 좀 더 쉽게 강한 파워를얻을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페더러는 8강전에서 조코비치를 꺾은 키리오스와 만나게 되는데, 이번 대회에서 가장 볼만한 경기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키리오스는 20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다양성에서 페더러에 필적할정도로 노련하다. 또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하고 스핀이 많은 서브는 세계 최상급으로 평가된다. 다만 감정 조절에 약점이 있어 이따금씩 어이 없는 경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구설에 오르기도 한다.

인디언 웰스 대회는 10여 년 넘게 랭킹 1~2위급 선수들이 우승한 대회로도 유명하다. 지금까지 조코비치가 5차례, 페더러가 4차례, 나달이 3차례 우승한 바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유일한 예외는 페더러의 현재 코치로 페더러보다 두 살 위인 이반 류비치치의 우승이었다.

1,2위인 머레이와 조코비치 대회 초중반 탈락한 현재 최상위 랭커는스탠 바브링카인데, 32강전까지 순항한 바브링카는 16강전에서 일본의 신예 요시히토 니시오카에게 패배할 위기까지 몰렸다가 가까스로 기사회생했다. 둘의 16강 전은 바브링카가 잘 못쳤다기 보다는 니시오카의 경기력이 빛난 한판이었다.

니시오카는 한국의 기대주 정현보다 한 살 위인 21세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세계 랭킹에서 정현보다 밑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 선전으로 단박에 60위권 안팎까지 랭킹이 수직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현은 92위로 하락세를 보이고있다.

동양인 선수로도 단신인 170센티미터의 니시오카는 테니스에서 유연성과좋은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예시하고 있다. 전신을 부드럽게 사용하는 탓에 키에 비해 강하고 스핀이많은 서비스와 스트로크를 구사한다. 정통 스타일과 다소 차이가 있는,즉 관절의 부드러운 이용이 적은 서비스와 스트로크 자세를 가진 정현으로서는 참고할만한 대목이다.

이 밖에도 올해 인디언 웰스 대회는 테니스 팬 혹은 동호인들이라면 쉬 잊기 힘든 여러 기록들을 양산하고 있다. 세계 랭킹 1위 앤디 머레이가 첫 경기에서 탈락한 것은 이번 대회의이변의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인디언 웰스 대회는 테니스 마스터스 대회 사상 가장 심하게 뒤틀린 대진표 편성으로 경기가 치러지기도 전에이런저런 말들을 낳았다. 32강까지 랭킹에 따라 시드가 배정된 가운데2위 조코비치가 자리한 쿼터에 강자들이 일방적으로 대거 몰리는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시드 1번의 머레이와 3번의바브링카가 대진표의 절반을 리드했다면, 2번 조코비치와 4번니시코리가 포진한 나머지 대진표 절반에는 페더러와 나달, 그리고 20세언저리 선수들 가운데 가장 랭킹도 높고 실력도 출중한 키리오스(16위)와 알렉산더 츠베레프(20위)까지 가세했다.

여기에 과거 페더러를 꺾고 유에스 오픈 우승컵을 가져갔던 후안 마틴 델 포트로도 조코비치 쿼터에 자리했다. 또 두어 해전 유에스 오픈을 우승한 경험이 있는 마린 칠리치도 조코비치 섹션에 배정됐다.

머레이 쪽 대진표 절반에 속한 선수들의 수집한 그랜드 슬램 우승컵은 머레이와 바브링카 각 3개로 모두 6개에 불과했다. 반면조코비치 섹션에는 페더러 18개, 나달 14개, 조코비치 12개, 델 포트로와 칠리치 각 1개로 모두 46개에 달했다.

마스터스 대회 사상 가장 한쪽으로 기울어진 대진표가 사막의 돌풍을 불러 온 주요인 가운데 하나임은 두말 할 필요없다. 아울러 테니스 사상 기량이 가장 출중한 스타들, 즉’빅4’로 불리는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머레이의 시대가 절정혹은 절정에서 막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신예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세대교체의 바람 또한 돌풍을 한층 거세게 하고 있다.

“나무가 왜 좋은지는 나도 몰러유”

우성면 동곡리 노오종씨의 남다른 나무 사랑

“가만 있자. 모과, 꽃 복숭아, 감나무, 주목, 사철나무…. 그래도 40가지는 안될 것 같은디.” 옆집의 노오종 아저씨는 느리게 고개를 두어 번 가로로 저였다. 70대 초반의 노 아저씨는 용달 화물트럭 일을 하는 틈틈이 나무 키우고 가꾸기를 즐기는데, 그의 집에는 웬만한 조경업체 뺨칠 정도로 나무들이 많다.

매일 노 아저씨네 정원을 바라보며 난 아저씨네 나무가 최소 40종은 된다고 생각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엊그제, 나의 제안으로 아저씨네 정원을 직접 돌아보면서 나무 종류를 헤아려보기로 했다. 하나 하나 손가락을 꼽으며 세다가 37종에 이르러 그만뒀다. 집 뒤편으로 자리한 향나무 소나무 등까지 포함하면 너끈히 40종은 넘을 게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허어~, 좀 되네. 근데 어떤 것은 이름도 몰러.” 노 아저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는데, 그 모습이 ‘역시’ 나무 같은 느낌을 줬다.

수목 천지인 곳이 시골이지만, 촌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나무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아니, 남다르게 나무를 좋아하는 노 아저씨 같은 시골 사람을 찾아보기가 예상 외로 쉽지 않다.

옆집의 노오종 아저씨가 나무 키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 아저씨는 나무가 왜 좋은지 이유를 똑 부러지게 댈 수는 없다고 했다. 그냥 천성인가 보다,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나무를 보면 편하잖아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계절에 순응하고, 심지어 예쁜 강아지마저도 변덕을 부릴 때가 있는데, 나무는 언제나 한 모습이어서 좋은 게 아닐까요?”

아저씨는 내 물음에 반쯤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한테 선물 받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만한 이렇다 할 선물이 없다. 하지만 딱 하나 아저씨가 공짜로 준 느티나무와 소나무만큼은 내 평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충남 공주의 한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저씨는 30 년 전 공주 시내의 한 조경업체에서 조경수 운반기사로 일하면서 나무에 마음을 알게 모르게 뺏기기 시작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 뒤 두어해 정도 잠깐 서울살이를 한 적도 있지만, 귀향하기 무섭게 나무를 심고 가꾼 것은 그러니 그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동네의 몇몇 사람들한테 듣기로는 노 아저씨는 평소 나무 나눠주는 걸 즐긴다는 거였다. “저거 이름은 모르겠는데, 하나 가져다 심을텨?” 나무 종류를 헤아리는 동안에도 수차례나 아저씨는 마음에 들면 나무를 가져가라고 말했다. 지난해 내게 15년 생 쯤은 돼 보이는 멋진 소나무를 주기 전에도, 잇속 빠르게 돈으로 계산하면 100만원 어치는 족히 될 다른 소나무를 건너 마을의 한 이웃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나무에 대한 순수하고도 남다른 애정 때문인지, 그가 가꾸는 나무들은 여간해서 가뭄을 타지도 않고 옮겨 심어도 잘 죽지 않는 거 같다. 또 그는 자신의 정원 나무뿐만 아니라 집 근처 동네 길가에 세워져 있는 주인 없는 나무들도 가지치기를 해주는 등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신나서 나무 손질을 한다.

옆집 아저씨가 준 우리 집의 소나무와 느티나무. 내 평생 최고의 선물이다.


주업인 용달 트럭운전 외에 약간의 밭 작물도 기르면서, 틈나는 대로 나무 손질에 정성을 다하는 아저씨는 천생이 ‘자연주의자’인 듯하다. 시골로 삶터를 옮긴 뒤 8년 동안 그를 가까이서 지켜 본 바 그렇다.

귀농도 귀촌도 아닌,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 즉 귀연을 꿈꾸고 시골로 거처를 옮긴 게 2009년이었다. 헌데 자연과 가까운 시골에 산다고 다 자연주의자는 아니다. 사람은 적은데 농토는 남아돌 지경이니, 시골에서 농사로 생계를 꾸리려 한다면 기계나 화학비료 농약 등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한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농약 한 방울 화학비료 한 톨 안 쓰고 400 평쯤 되는 밭을 부치다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욕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온 게 한두 차례가 아니다. 그만큼 풀 그리고 곤충이나 벌레들과 싸움이 힘들다.

그러나 아저씨는 가능하면 볏짚을 이용해 보온하고 닭똥 등을 퇴비로 활용하며 농약통을 짋어지는 대신,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여름에 밭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멘다. 요즘 부쩍 관심을 끄는 유기농이니 자연주의 농법이니 하는 걸 그가 배우려 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또 아저씨는 그 같은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자연주의 농부의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은 나무를 유달리 좋아하는 점 외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두어 해전 공주시청에서 아저씨와 우리 집 앞으로 이어지는 도랑을 콘크리트 수로로 깔끔하게 바꿔준 적이 있었다. 시골 사람 열이면 아홉이 좋아하는 그런 시청 공사를 두고 아저씨가 혼잣말로 나지막이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자연스럽고 훨씬 좋은데…”라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또 이른바 ‘푸세식’ 화장실을 오랫동안 고집해 온 것도 아저씨의 자연주의 품성을 짐작케 한다. 지난 가을 “엉덩이 얼어 터져 제 명에 못 살겠다”는 아주머니의 해묵은 원성을 끝내 어쩌지 못하고 개조공사를 벌이긴 했지만, 그는 무엇이든 인공적인 건 최소한도만 하려든다.

3월도 어느덧 중순에 접어드는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나무 심기를 고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관상용으로 혹은 울타리로 또 혹은 과일수확이나 수목 판매 등으로, 저마다 나무를 심는 이유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진정 나무를 사랑한다면, 그 마음은 자연주의에 맞닿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무 하나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땅을 흔히 ‘불모’라는 단어로 수식한다. 불모의 땅이 생명을 품을 수 없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자연주의란 섭리에 순응하는 삶의 양식일 것이다. 수목이 존재해야 사람도 동물도 터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의 출발점일 터이다.

지금까지 국내외에 걸쳐 주소지를 둔 곳이 족히 20곳은 된다. 그 중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실천적 모습에서 옆집 아저씨만한 이웃은 없었던 듯하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옆집 아저씨를 보며 느낀 점은 나무에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치고 최소한 나쁜 사람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나무에 대한 사랑과 헌신 정도는 어쩌면 자연주의 삶을 가늠해 보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달걀 한개 얼마면 적당할까


우리 집 닭은 암컷이 6마리, 수컷이 2마리이다. 반쯤은 반려동물이지만, 무엇보다 유정란을 얻을 목적으로 키운다. 6마리의 암탉 가운데 불임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같은 시기 즉 2월에서 3월 사이에는 하루 평균 서너개의 알을 낳는 듯 하다.

8마리의 닭은 바닥 면적 약 40평의 공간에 살고 있다. 주 먹이는 옥수수 배합사료지만 국물 내고 남은 멸치, 과일이나 채소 자투리, 그리고 이따금씩 고기 부스러기나 건더기도 제공된다. 3월 들어 밭과 마당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어린 잡초들의 새싹도 뜯어 주고 있다.

사료 값 절약이 곧 유정란 생산 원가 저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요즘엔 한달 3포대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1포대 당 가격은 두 달 전보다 1000원 싼 1만2000원, 한 달에 3만6000원 정도를 사료 값으로 지출하는 것이다.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지만 요즘엔 한달 평균 100개 안팎의 달걀을 얻는 거 같다. 그렇다면 달걀 하나 얻는데 약 360원이 기본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아침과 오후 늦게 두 차례 먹이와 물을 주는데 걸리는 시간 대략 25분, 여기에 40평 가량의 땅을 할애하고 있으니 달걀 생산 원가를 따진다면 개당 최소 500원쯤은 돼야 손해가 없을 듯 하다.

500원 이라는 가격에는 유통이나 포장 등의 비용은 포함돼 있지 않으므로 나 같은 초보가 키운 방사 유정란의 가치는 최소 수준이 500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