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달걀은 트럼프와 찰떡궁합

“윤송이 아빠는 요즘 정말 좋으시겠다. 그 귀한 달걀을 마음대로 드실 수 있으니 말이야.” 지난 주 가게일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 엄마로부터 전해들은 말입니다. 아이 엄마 동료 한 명이 새삼 제 ‘안부’를 물으면서 ‘달걀’ 얘기를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아이 엄마의 동료 등에게 네댓 차례 달걀을 준 적이있습니다. 아이 엄마 동료와는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얼굴을못 본 게 최소 5~6개월은 되는 듯 합니다. 오랫동안 상면하지못한 제 안부를 물어준 것은 고맙지만, 왠지 저의 안부보다는 달걀에 방점이 찍힌 듯 했습니다..

달걀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이토록 크게 받아본 적은 평생에 걸쳐 없는 듯 합니다. 1년도 채 안 된, 지난해 말에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뭇사람들로부터’달걀 부러움’을 산 적이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3817&CMPT_CD=SEARCH)

아기 주먹만한 먹을 거리 덕분에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되기는 했지만 사실 기분이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닙니다. 작은 안도감 같은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최대한자연의 일부로 살고 싶어 이른바 ‘귀연 생활’을 시작했는데, ‘크게 잘못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텃밭 한구석에 40평 안팎의 닭장을 마련하고, 닭을 키운 지 1년이 좀 넘은 거 같습니다. 그간 닭의 숫자는 좀 늘었다 줄었다 했는데, 현재 암컷 10마리 수탉 1마리가 닭장 안을 어슬렁거립니다.
시골에 살긴 하지만, 언론을 통해 이번에 살충제 얘기를 접하기 전에는닭장(혹은 닭)에 농약을 뿌릴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몰랐습니다. 농사랍시고 햇수로 9년째 짓고 있는데, 지금까지 닭 같은 가축은 물론, 이런저런 작물을 재배하는 밭에 살충제나제초제를 제 손으로 뿌린 적은 단 한차례도 없습니다.

전쟁으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여름철 풀과의 싸움에서 매번 패배하고, 풀에대해 지독한 증오의 감정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제초제 같은 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제초제 또 살충제를 사용하는날이 오게 된다면 그건 귀연 생활을 접기로 마음 굳혔을 때일 것입니다.

그러나 살충제 제초제 등 농약 사용의 ‘불가피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내 손에 피를 묻힐 수 없다는 것일 뿐, 독성 물질 없이는 현실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아니 농사를지을 수 없다고 단정한다면 다소의 과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농약 없이도 농사는 지을 수 있는데 한국인들, 아니 온 인류의 사고방식이 확 바뀌어야 가능할 거 같습니다.

까짓 것 농약이 뭐길래?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농약 사용 전면금지는 현대인들의 삶, 그 기저와 아주 밀접한관련이 있습니다.

어렵지 않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올해로 6년째 포도를 따 먹고 있습니다. 집 주차장 옆에 6그루를 심었는데, 제법 잘 자랍니다. 포도 송이도 얼핏 보면 주렁주렁 많이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번듯한 포도송이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벌레로부터 자유로운 포도송이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올해 초 집 동쪽 입구에 있었던 복숭아 나무 4그루를 다 베어 없애야했습니다. 매년 큼지막한 복숭아가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열렸던 나무들이었습니다. 해마다 그루당 적어도 80~90개 이상 복숭아가 열렸는데, 지난 6년 동안 벌레 먹지 않은 복숭아는 20개도 보지 못한 듯 합니다.

포도와 복숭아뿐만이 아닙니다. 마늘도 그렇고 블루베리도 예외가 아니며, 지난해의 경우에는 감자 수확도 형편 없었습니다. 자급자족이 귀연생활의 목표였는데, 지금은 반쯤은 포기했습니다. 농사가 엉망인건 무엇보다 제 노력이 부족했고, 또 농사 기술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문하고 싶습니다. 농약이나 인위적인 화학물질을 일체 사용하지않고 포도나 복숭아 풍작을 거두는 방법이 있을까요? 시골에서 트랙터만 있다면, 60~70대 농부도 1만~2만평정도 쌀농사가 가능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기계의 힘만으로는 소비를 충족시킬만한쌀을 생산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뚱딴지 같은 얘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농약 사용은 작금 논란이되는 원자력발전 문제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원전은 최소한 한때 경쟁력이 있는 발전 수단이었습니다. 지금도 또 미래에도 그럴지 안 그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장원전 발전을 올 스톱 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세계적인 농약 사용 중단이나 원전 발전 중단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인류의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농약 사용이나 원전 가동 확대는 아마도 답이 아닐 것입니다. 높은 효율에 매달린 나머지 크든 작든 인명의 희생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사안들인 까닭입니다.

살충제 달걀 사태가 종국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너무도 뚜렷합니다. 먹을거리와 관련해 현대인들은 섭리와 자꾸만 동떨어져 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전 같은 산업도그렇고, 심지어는 교육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사회는 인간의 욕심 혹은 탐심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체계를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기적으로 혹은 겉으로는 효율적인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 또결국에는 스스로 파멸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은 그런 세상 말입니다.

살충제 달걀 파동은 생경한 듯하지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시킵니다. 그는 옳으냐, 그르냐는 안중에 없고 이기냐 지느냐 만을 따지는 인물로알려져 있습니다. 살충제 달걀은 생산농가든 소비자든 가릴 것 없이 이기고 지는데 즉, 이를 경제적 측면에서 표현하자면 돈을 더 버느냐 덜 버느냐에 온통 관심을 갖은 결과가 아닐까요.

사족을 붙이겠습니다. 매년 봄 집 동쪽을 화사하게 밝히던 해충으로 인해 병들었던 복숭아 나무의 꽃을 내년부터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는데요. 복숭아 꽃만이 아니라 윤이 반들반들나던 진갈색 등을 가졌던 복숭아 즙을 먹고 살던 장수풍뎅이 일가족도 이제 못볼 거 같습니다. 자연처럼 사는 게 참 간단치 않네요.

[시골 집짓기] “설계도 놓고 어머니와 불화가 힘들었다”

“또 바꾸라고요? 또? 어머니가 다 알아서 하세요. 저는 손 떼고 돈만 댈게요. 제가 왜 이래야 하죠?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애초부터 효자는 아니었지만, 불효막심할 정도로 못된 아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어코 어머니에게 폭발하고 말았다. 지난 4월 초순이었다. 새 집을 짓는다고 수 없이 설계도면을 그렸고, 또 수정에 수정을 가하곤 했는데 어머니의 벽을 넘기가 정말 힘들었다.

집을 부지 위에 전체적으로 어떻게 배치할 거며, 방과 거실 주방은 어떤 크기로 할 것인가 등을 두고 최초로 가족회의가 열린 것은 2016년 추석 때였다. 추석을 겸해 모인 자리에서 점심 식사 후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개괄 브리핑을 했다.

2009년 초 이미 집을 한번 지어본 터여서, 집짓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아니 그때 생전 태어나 가장 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은 바 있어서 솔직히 말하면 집짓는 걸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80세가 넘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심스레, “솔직히 말하면 아파트에서는 살기 싫다. 더 늙어서 도회로 가더라도 한 10년만이라도 시골에서 살고 싶구나”라고 얘기하는 거였다. 큰 아들 고생시키기 미안하지만, 자신들의 솔직한 심정은 그렇다는 거였다.

“음~, 집을 한 번 더 지어야겠군.” 내 딴에는 속으로 각오를 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올해 설 때는 물론, SNS 등을 통해 수없이 설계도면을 춘천의 동생 집에 머무르는 부모님들에게 전달해 보여 드렸다.

“아들, 가능하면 정방형에 가깝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거실을 중심으로 방들과 주방을 배치하면 좋을 듯 한데.” “오빠~, 그래도 지금 오빠네 집처럼 방이나 거실 주방 등이 전부 남향이면 좋겠어, 남향이 경험해 보니 확실히 좋더라고.” 수정된 설계도면을 공개할 때마다 식구들 의견은 분분했다.

3명의 동생과 매제, 그리고 아버지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 아니 반영하고 조화를 이뤄내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매번 퇴짜를 놓은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큰 아들 기분 상할까봐 누구보다 완곡하게 자신을 의견을 표명했다. “애비! 생각해봐, 세탁기를 주방에 놓는 것까지는 좋지만, 세탁물 투입구는 실외 쪽으로 빼는 게 낫지 않겠어?”

어머니는 보기에 따라서 기상천외하지만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기하곤 했다. 과거 미국에 10년 넘게 체류한 탓에 나야 그네들의 실내 구조에 어느 정도 익숙한 편이지만, 미국생활 다운 미국생활을 하지 않았음에도 어머니의 아이디어 가운데는 미국의 집 구조의 디테일을 닮은 구석이 있었다.

어머니의 아이디어는 참신하기도 했지만 우리네 실정에서는 황당한 것들도 적지 않았다. “제일 서쪽 끝 방 있잖아, 거기에서 바로 밖으로 나가는 문을 다는 건 어때?” “아~, 어머니 의견 얘기는 돼요. 하지만 거기다 문 달면 단열은 둘째 치고 그 공간에 작은 서랍장 하나도 놓을 수 없잖아요. 물론 그쪽으론 침대 붙이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쉴 새 없이 어머니는 이런 저런 생각을 털어놓고 설계에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평소 밤 시간에 자리에 누우면 집 짓는 게 아니라도 오만 가지 생각이 많은 어머니였는데, 집을 짓는다니 어머니한테는 그만한 ‘생각의 호재’가 없었던 것이다.

제 입으로 자기 어머니 얘기하기가 뭐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쿨한 성격을 가졌다. 시원시원하고 사사로운 구석이 거의 없는 분이다. 하지만 타고난 괴짜여서, 옛날 그 춥던 겨울에도 소녀 시절부터 속치마를 입지 않고 지내는 바람에 외할머니한테 꾸지람을 엄청나게 들었던 그런 유형이다.

어머니 괴짜 취향을 일일이 열거 하려면 밤을 새워도 부족하다. 환갑 넘어 번지 점프를 하게 해달라고 말씀하셔서 애 먹은 적도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어머니의 ‘이상’ 취향이 가장 두드러진 건 건축과 토목 분야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시골 사실 때 불시에 방문하면 어머니의 손에는 보통 곡괭이와 망치 삽자루 같은 게 들려 있었다. 반대로 아버지는 가위 낫 호미 같은 소연장을 쥐고 있을 때가 많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작물을 심으려고 쇠스랑으로 밭을 파는 일은 거의 항상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50~60년 전 처녀시절 당시 동네 초가집들을 고치는 데도 마을 어르신들에게 조언(사실은 지적)을 해 받아들여지곤 했다고 한다. 춘천의 동생 집은 10여 채 이상이 모인 전원주택 단지인데, 어머니는 동생 집에 체류하는 동안 물 만난 고기처럼 굴삭기가 부지를 정리하고, 빌더들이 전원주택 짓는 걸 즐겨보곤 했다.

2009년 초 첫 집을 지을 때, 기초에도 줄기초, 점기초, 통기초 등이 있다는 걸 어머니를 통해 사실 처음 알았다. 어머니는 건축 토목 용어는 몰랐지만, 어디 바람 쐬러 가서 고찰 등을 살펴볼 때도 기초를 유심히 보곤 했던 모양이다. 요컨대, 처녀 시절부터 건축과 토목은 어머니의 일관된 취미이자 최대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우리 어머니 굴삭기 한 대 사주면, 집 다부수고 새로 지으셨을 거야.” 남들은 농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형제들끼리는 가끔 이런 얘기도 한다. 실제로 어머니는 2009년 지은 나의 첫 집을 집 본체만 빼놓고 거의 다 개조하다시피 했다.

무겁기로는 100kg이 넘는 돌들을 지렛대를 이용해 이동시켜 놓는 등 높이 1.5미터 길이 15미터 정도 되는 축대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쌓아 놓았다. 어디 그뿐인가? 당시 집짓기 위해 사들인 부지 한 구석에 30평가량 됐던 축사의 기초 바닥터가 있었는데 소형 해머로 달포에 걸쳐 다 깨부숴 흙이 드러나도록 복원시켜 놓기도 했다.

올 들어 새집을 지으면서 착공은커녕 설계 국면에서부터 어머니에게 지쳐버린 건, 그러니 우리 식구들 눈으로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었다는 뜻이다. 결국 크게 설계도면을 10여 차례이상 뜯어 고쳤음에도, 더구나 “어머니 됐죠, 이게 마지막이에요”하고 어머니로부터 오케이를 받은 설계도면임에도 자고 나면 이튿날 다시 “애비, 이것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봐”하고 뒤틀어버리는데 내가 터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아버지까지 사태 수습에 나서야 했고, 어머니는 매번 그랬듯이 “이 늙은이가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애비. 집 짓는 거 아니라도 애비가 해야 하는 집안 일들이 한 짐인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선에서 대략 설계가 마무리 지어졌다.

과거 첫 집을 지을 때는 너무도 시간이 촉박했고, 아이 엄마의 지인이 시공 기술자로 영입된 까닭에 식구들은 설계에 관여하지 않았었다. 대신 시공 기술자 분을 대하기가 너무도 조심스러워서 식구들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기 일쑤였는데, 그 바람에 거의 매번 그 분의 의견에 끌려가고 말았다. 당시에는 나 또한 집짓기가 첫 경험인데다 건축지식도 전무하다시피 해서 내 생각을 관철할 생각도 못했다. 헌데 10년 가까이 살고 보니, 당시 내 생각이 옳았던 게 훨씬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두 번째로 집을 짓기에 앞서 설계 도면을 움켜쥐고 스스로, “이번만은 시공책임자에게 내 생각을 꼭 제대로 분명하게 전달해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던 건 당시 경험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4월에 설계도면을 확정짓고, 그간 전화나 SNS로만 연락해 왔던 시공책임자를 만나게 됐다.

책임자의 첫 인상은 의심의 여지없이 건축 시공 쪽에서 오랜 기간 종사해 온 사람의 바로 그 것이었다. 속으로 “건축 일 하는 사람은 고집이 세다”는데 생각하며, 책임자와 어떻게 조화를 이뤄나갈지, 더구나 공사 단가를 낮게 책정했는데, 일이 계획대로 풀려갈지 한편으로 걱정반 우려반의 심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집짓는데 설계 비중이 반도 넘는다는 점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서 한편으로 안도와 향후 일정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설계 잘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하거나, 시공과정에서 시공팀 등과 얼굴을 붉힐 소지도 크다. 게다가 자칫 돈은 돈대로 예상보다 더 깨지는 일이 생겨, 집짓기가 끔찍한 기억이자 상흔으로 남을 수도 있다.

페더러 나달 “흘러간 물이 되돌아 왔다”

윔블던 대회 8강전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세계 랭킹 1위 앤디 머레이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머레이가 샘 퀘리에게 비록 상대전적 7대1로 절대 우세이긴 하지만, 그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예견한 바 있다. 12일 밤(한국시간) 열린 경기에서 머레이는 실제로 퀘리에게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분루를 삼키고 말았다.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41541&CMPT_CD=P0001)

지난해 바로 이 대회에서 퀘리는 당시 랭킹 1위이던 조코비치를 꺾은 바 있었다. 조코비치는 그 때 패배 이후 지금껏 슬럼프를 시원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퀘리는 조코비치 상대전적이 1승 7패로, 이번에 머레이를 패퇴시키기 직전 머레이 상대전적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랭킹 1위 머레이도 이번의 패배가 슬럼프로 이어질까? 그렇지 않을 확률 보다 그럴 확률이 높다. 페더러-베르딕, 퀘리-칠리치 대결로 윔블던 대회 4강이 압축된 가운데 요동치는 테니스 판도를 짚어본다.

윔블던 대회 8강전을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세계 랭킹 1위 앤디 머레이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머레이가 샘 퀘리에게 비록 상대전적 7대1로 절대 우세이긴 하지만, 그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예견한 바 있다. 12일 밤(한국시간) 열린 경기에서 머레이는 실제로 퀘리에게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분루를 삼키고 말았다.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41541&CMPT_CD=P0001)

지난해 바로 이 대회에서 퀘리는 당시 랭킹 1위이던 조코비치를 꺾은 바 있었다. 조코비치는 그 때 패배 이후 지금껏 슬럼프를 시원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퀘리는 조코비치 상대전적이 1승 7패로, 이번에 머레이를 패퇴시키기 직전 머레이 상대전적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랭킹 1위 머레이도 이번의 패배가 슬럼프로 이어질까? 그렇지 않을 확률 보다 그럴 확률이 높다. 페더러-베르딕, 퀘리-칠리치 대결로 윔블던 대회 4강이 압축된 가운데 요동치는 테니스 판도를 짚어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윔블던에서 랭킹 1위 선수를 잡아 최대의 파란을 일으킨 퀘리 선수(왼쪽)와 그의 어린 시절 코치 슈나이블리의 소식을 전하는 남가주 테니스 협회 뉴스 인터넷 화면. 코치 슈나이블리는 과거 필자 아들의 코치이기도 했다.


*페더러 나달 양강 구도=페더러가 윔블던에서 마지막 우승한 것은 2012년 즉 5년 전이었다. 이번 윔블던 대회 준결승전에 이르기까지 그의 기량과 몸 상태를 고려하면, 2012년보다 우승 확률이 높다. 게다가 준결승전에서 만나는 베르딕을 상대로는 18승 6패의 확실한 우세를 지키고 있다. 객관적으로 18승 6패라면, 베르딕에게도 기회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2014년 이래 지금껏 7번 대결에서 베르딕이 7차례 모두 패배했다. 페더러가 우리 나이 37세로 ‘늙긴’ 했지만, 베르딕도 33세로 전성기를 지나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태인 탓이다.

페더러가 우승할 경우 남자 테니스는 최소한 올 한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진기한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페더러는 나달과 테니스계를 양분했는데, 흘러간 물이 다시 되돌아오듯 두 사람이 랭킹 1,2위를 다툴 가능성이 커졌다. 페더러 나달 보다 젊은 조코비치와 머레이가 1,2위를 점하다가 이들이 뒤처지고 다시 옛날 판도로 돌아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테니스가 아니더라도 스포츠계에서 이런 사례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페더러와 나달의 양강 구도가 4~5년씩 지속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페더러와 나달은 기술적으로 과거보다 더 완벽해진 상태인 탓에 체력 저하에도 불구하고 쉬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랭킹 1위인 머레이의 경우 하반기에 지켜내야 할 포인트가 엄청나고, 부상도 있어 불가피하게 내리막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퀘리와 ‘샌드위치’ 선수들의 약진=샘 퀘리의 기량과 실력은 세계 20~30위권이다. 한때 세계 17위까지 오른 적도 있지만 40위 밖으로 물러나 있었던 적도 많다. 퀘리는 큰 경기, 그리고강한 상대와 맞서 눈에 띄는 플레이를 선보이곤 한다. 올해 초엔 나달을 상대로 멕시코 아카풀코 대회 결승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퀘리와는 아주 미세한 개인적 인연도 있는데, 필자의 아들을 지도했던 미국인 코치 팀 슈나이블리가 한때는 퀘리의 코치이기도 했다. 슈나이블리는 현재 조코비치의 임시 코치를 맞고 있는 테니스 전설 가운데 한 사람인 앤드레 아가시와 함께 라스베이거스에서 학창시절 선수생활을 했다. 퀘리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격이 강점이다. 강자를 만나서 시쳇말로 잘 쫄지 않는 선수라는 얘기이다.

미국의 테니스 강자들이 윔블던 대회에서 줄줄이 탈락한 가운데 퀘리 혼자만 16강까지 진출하자 많은 언론이 그에게 부담이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역시 그 다웠다. “테니스는 개인 스포츠이고, 나는 미국의 희망 같은 게 아니다. 내가 신경 쓰는 사람은 가족과 코치 트레이너 등이다.” 퀘리는 앞선 인터뷰에서 윔블던 대회에서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농반진반으로 “상금”이라고 답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지는 세계 테니스계의 큰 흐름 가운데 하나는 영건들의 활약이다. 20대 초반이하의 선수들로서 도미닉 팀, 알렉산더 츠베레프, 닉 키리오스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정현도 국제 테니스계가 주목하는 젊은 선수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들이 모두 만 30세가 넘은 ‘빅 포'(Big 4) 즉 페더러 나달 머레이 조코비치를 곧바로 따라 잡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샌드위치 세대인 만 30세 미만 선수들이 곧바로 자리를 영건들에게 내줄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윔블던에서 최대 파란을 일으킨 퀘리도 그중 하나이며, 준결승 상대인 칠리치(만 28세)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랭킹 6위의 칠리치는 2014년 그랜드슬램 대회인 유에스 오픈 우승자이기도 하다. 기복이 단점 일뿐, 경기 리듬이 좋을 때는 빅 포 모두를 꺾을 수 있는 기량을 갖춘 선수이다.

칠리치와 퀘리 외에도 밀로스 라오니치, 케이 니시코리, 그리고르 디미트로프 등 샌드위치 세대들이 영건들에게 곧바로 밀려 뒷방신세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윔블던이 끝나면 2017년 그랜드슬램 대회는 유에스 오픈 딱 하나만 남게 된다. 하반기는 대회는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한 하드코트 대회가 주류이다. 테니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실력으로 박빙인 선수들이 촘촘히 상위권을 형성하고 있어 팬들에게는 지금 이 시기보다 눈이 즐거운 시기도 많지 않을 듯 하다.

머레이 조코비치 둘 중 하나는 비운의 주인공 될 수도

2017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연일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7월 11일 오후(한국시간) 현재 대략 8강이 정해진 가운데, 대회가 끝나는 오는 일요일까지 드라마는 절정을 향해 치달을 것이다.

테니스를 최고의 현재진행형 ‘스포츠 다큐멘터리 드라마’로 만든 주인공들은 10년 넘게 변함이 없다. 페더러, 나달, 머레이, 조코비치 등 4명이 주연이다. 이중 아쉽게도 나달은 11일 새벽 하위 랭커에게 5시간 가까운 접전 끝에 극적으로 패배하면서 비운의 주인공 역으로 이번 윔블던 대회에서 하차했다.

롱런에도 불구하고 이들 4명이 물리지 않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건, 이번 나달의 사례처럼 기묘하게도 역할들을 바꿔 맡고 있는 탓이 크다. 시쳇말로 각본이 없음에도 마치 극적으로 짜인 각본에 따라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번 윔블던 대회를 중심으로 이들 4명의 테니스 드라마 속 운명을 점쳐 본다. 나달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의 우승 가능성과 그에 따른 남자 테니스계 판도 변화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페더러=다음 달이면 페더러는 만 36세가 된다. 지난 해 윔블던 대회 직후 무릎 부상으로 일찍이 시즌을 접어야 했던 페더러는 올 초 호주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테니스의 역사를 새로 썼다. 그랜드슬램 우승 횟수 18회로 역대 2위인 나달과 차이를 3개로 벌려놓았다.

페더러는 잔디 코트에서 열리는 윔블던 대회에 집중하기 위해 프렌치 오픈으로 막을 내린 이른바 유럽 흙 코트 대회 전부를 출전하지 않았다.

조금 더 커진 라켓 헤드 덕을 톡톡히 보고 있으며, 기술적으로 전성기보다 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 손 백핸드라는 약점을 공격적으로 극복, 올해 천적인 나달에게 3연승을 거두기도 했다.

페더러는 그러나 이번 윔블던을 우승한다 해도, 랭킹 1위 자리로는 당장 복귀할 수 없다. 현재5위에서 3위로 2계단 상승만이 가능하다.

페더러는 이번 윔블던 대회 대진운이 최악이었다. 잔디 코트 강자가 모두 그의 쿼터(quarter)에 몰려 있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10일 저녁 16강전에서 과거 이 대회 4강 진출 경험도 있는 젊은 선수, 디미트로프를 셋트 스코어 3-0으로 일축했다.

8강전에서 페더러가 상대해야 할 선수는 지난해 그에게 패배를 안겼던 라오니치다. 최강의 서버 가운데 하나인데다 공격적인 라오니치는 매번 잔디 코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20대 초반 이하의 젊은 선수 가운데 최강인 알렉산더 츠베레프와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치룬 탓에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

페더러가 4강에 오른다면 조코비치를 만날 확률이 높다. 만일 조코비치를 꺾는다면 결승에서 머레이나 혹은 마린 칠리치를 상대하게 될 가능성이 큰데, 페더러로서는 머레이보다 랭킹이 낮은 칠리치와 경기가 더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과거 유에스 오픈을 우승한 적 있는 칠리치는 이번 대회 들어 최고로 훌륭한 기량을 보이는 선수로 꼽힌다.

페더러가 우승한다면 올해 테니스 판도는 페더러와 나달의 양강 구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십년 가까이 테니스계를 양분했던 페더러-나달 시대가 데자뷰처럼 다시 현실화되는 것이다.

*나달=16강전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던 나달은 윔블던에서 결승에 진출만 해도, 랭킹 1위 복귀가 확정적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가 톱 랭커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지난해 딴 점수를 제외할 때, 올들어 가장 많은 랭킹 포인트와 승수를 기록한 탓이다.

나달은 체력소모가 큰 긴 랠리, 그리고 수비 위주 경기 방식과 이에 따른 높은 부상 확률이 아킬레스 건으로 지적됐었다. 하지만 올 들어 그는 포인트를 짧게 끝내는 한편 베이스 라인에 보다 가까이 붙어 공격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과도하다 할 정도로 공을 감아서 치는 톱스핀 스타일이 공이 지면에서 잘 떠오르지 않고 미끄러지는 잔디 코트와는 일종의 상극이어서 잔디 구장에서는 성적이 가장 저조한 편이었다.

이번에 하위 랭커한테 덜미를 잡히기 전에도 2012~2015년 윔블던 대회에서 세계 랭킹 100위권 밖의 선수들에게 4번이나 초반에 패퇴하고 말았다. 세계 랭킹 26위에게 이번에 진 것은 그에 비하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윔블던 16강 탈락에도 불구하고 나달은 흙 코트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 무릎과 손목 등 잦은 부상으로 은퇴 얘기가 나왔던 게 1년도 못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다 강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나달이 4강 밖으로 당분간 밀려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머레이=지난해 윔블던 우승자로 이른바 디펜딩 챔피언인 머레이는 이번 대회 대진운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서구의 일부 언론이 ‘친절한'(kind) 대진표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잔디 코트의 윔블던은 사실상 그의 홈코트이고, 또 3번의 그랜드슬램 우승 중 2번을 윔블던에서 일궈냈으며, 올림픽 금메달 등을 역시 잔디 코트에서 거둬 잔디에서 성적이 가장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머레이는 유리한 대진표대로 비교적 무난하게 16강에 진출했고, 8강전에 미국 선수 샘 퀘리를 상대한다. 퀘리는 지난해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기량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던 조코비치를 침몰시켰다. 조코비치는 당시 패배 이후 비교적 최근까지 끝없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머레이와 퀘리의 역대 전적은 7대 1로 압도적 머레이 우세이다. 그러나 샘 퀘리가 역대전적 7대 1로 열세를 보였던 조코비치를 지난해 윔블던에서 꺾고 8대 2로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머레이가 꼭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

머레이는 퀘리를 꺾을 경우, 칠리치와 질 멀러 경기의 승자와 만난다. 멀러는 바로 나달을 꺾고 올라온 선수다. 이번 윔블던 대회 지금까지 성적을 보면 칠리치가 멀러를 제압할 가능성이 높다.

역대전적에서 머레이는 칠리치에 12대 3으로 절대 우세지만, 기복이 단점으로 지적된 칠리치가 최근 들어 최고 수준 경기리듬을 보이고 있어 예측 불허의 경기가 될 것이다.

머레이가 어떻게든 결승까지 진출한다면, 현재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 경우 흙코트는 나달이, 잔디 코트는 머레이가 호령하게 되고, 결국 하드코트 왕국을 놓고 페더러와 조코비치가 다투게 되는 테니스 삼국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조코비치=기술적으로 사실상 무결점에 가까운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각 6살과 5살 위인 페더러 나달 그늘에서도 그랜드슬램 대회를 12차례나 제패했다. 생일이 딱 1주일 빠른 동갑내기 머레이에 비해 월등 훌륭한 성적이다.

선수 생활 초반에는 스스로 감성 컨트롤을 잘못하는 편이었고, 글루텐 앨러지 같은 게 있어서 고생했었다. 지난 해 윔블던 대회 이후 말 그대로 급전직하의 인생을 경험하고 있는데, 가정 생활에서 불편한 게 있었고 그 것이 기량과 경기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상위 선수들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코치 트레이너 등과 최근 결별했다. 현재는 과거 피트 샘프라스와 함께 세계 테니스계를 양분했던 안드레 애거시를 일종의 계약 코치로 영입했다.

페더러가 최근 인터뷰에서 “조코비치의 1위 복귀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만 30세로 아직 전성기인 조코비치의 1위 탈환은 유력하다. 다만 시간의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조코비치는 이번 윔블던 대회 직전에 열렸던 잔디 코트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이번 윔블던 대회에서 전성기 기량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한마디로 최근 1~2주 사이에 슬럼프의 바닥을 찍고 무서운 속도로 컨디션을 회복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코비치는 페더러와 달리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1위 자리로 즉각 복귀할 수 있다. 단 전제가 있었는데, 나달과 머레이가 8강전 혹은 이전에서 탈락해야 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달이 탈락한 현시점에서 만약 머레이가 8강전서 패하고, 조코비치가 우승한다면 또 한번 극적인 드마라가 연출되는 것이다.

이 경우 삼국지의 주인공은 호주오픈을 우승한 페더러, 프렌치오픈을 거머쥔 나달, 그리고 조코비치 자신이 될 것이다. 머레이는 이같은 삼국지 구도에서는 1위 자리를 내주고 급전직하하는 비운의 역할을 혼자 떠맡는 형국이 될 것이다.

[시골 집짓기] 두 채 지었지만 20년 늙지는 않았다

300? 340? 380? 400? 수능 점수 뭐 이런 건 아니고요. 돈 액수 입니다. 가능한 돈과 친하게 지내지 않으려 평생 노력해 왔는데, 집을 짓다 보니 돈을 결국 최우선으로 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만 8년 전, 그러니까 2009년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는 40대 후반, 경제력이 어쨌든 좀 있을 때였고, 50대 중후반인 지금은 벌이가 시원찮아 건축비를 신경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번째 조적 때와 마찬가지로 두번째인 목조주택도 이른바 통기초를 했다.

건축비 평당 340만원에 마음이 끌린 배경은 한마디로 저렴한 가격 요인이었다는 거죠. 지난 5월말 시작한 경량 목조주택 공사가 7월 중순으로 넘어가는 지금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시쳇말로 남자가 태어나면, 집은 한번 지어봐야 한다고 하죠. 10년도 안 되는 시간에 저는 결국 두 채를 지어보는 경우가 됐습니다.

준공이 멀지 않은 이번 집은 어머니 아버지가 아파트 생활을 원치 않으시는 바람에 짓게 됐습니다. 만 8년 전 집 지을 때는 기술자만 고용하고, 시멘트 비비는 일부터 시작해서 온갖 잡일은 다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집 짓기는 목조주택이라 저같이 무식하게 힘으로만 일하는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더라고요. 게다가 체력도 40대 때에 비하면 부실해졌고요.

평당 340만원 짜리를 고르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300만원은 너무 저비용이라 좀 믿음이 안 갔고, 400만원 짜리는 가격대가 제일 높았다는 이유로 피했습니다.

결국 초반에 300과 400은 제쳐두고 340과 380을 놓고 나름 꼼꼼하게 견주었는데, 재료라든가 하는데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결국 시공팀의 기술력과 경험이 관건이었는데 솔직히 평당 40만원 싼 게 380이 아닌 340을 선택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어요.

현재 짓고 제 집은 창문이나 단열재 등등이 기본적으로 2등급짜리 입니다. 340으로 공사를 하겠다고 한 시공팀장에게 주문한 건 3가지였습니다. 안전한 집, 단열이 잘 되는 집, 습기에 강한 집.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하시더라고요. 전화와 문자로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 받았습니다. 올해 2월부터인가 얘기를 시작해서 결국 5월 말에 착공했으니, 비교적 오랜 시간 서로 의사를 교환한 거지요.

창호도 보온재도 2등 혹은 나 등급을 썼다.

참고로 평당 340이란 비용에는 기초공사비 등등은 포함되지만, 싱크대 붙박이장 수도설치 전기인입 등은 포함되지 않고요. 건축설계, 토목설계 비용도 별도입니다.

남자가 태어나면 집은 한번 지어보고 죽어야 한다는 말을 서두에서 꺼냈습니다만, 이런 말도 있습니다. “집 한번 지으면 10년은 늙는다.”

제가 50대 중후반인데, 요즘 여러 사람들로부터 60대 초중반으로 보인다는 얘기를 듣곤 합니다. 집을 2개씩이나 손댔으니 20년은 늙어야 할 텐데, 진짜 나이보다 예닐곱 살 더 먹은 정도로 봐주는 걸 보면 그래도 집 한 채에 10년씩까지 늙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이번 집을 지으면서도 노심초사했던 부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걱정 한 톨 없이 집 짓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돈을 물 쓰듯 하는 재벌이라도 아마 건축 중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음이 불편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여튼 집 짓는 과정 내내 만족스럽고 마음이 편했다면 일단 그 건축주는 상당한 인격을 가졌거나, 천성이 매우 낙관적 낙천적인 분이라고 봐도 별로 틀리지 않을 거 같습니다.

완공을 향해 막바지로 접어드는 지금, 지난 두어 달 동안의 크고 작은 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만족한다고 총평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물론 집이 제대로 지어졌는지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집이 제대로 지어졌는지는 적어도 만 3년쯤은 살아봐야 그럴듯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저는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사시게 될 현재 건축중인 집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제 집이 있는데요, 지금 거주중인 집에서 9년째 살아본 경험으로는 그렇습니다.

(현재 건축중인 목조주택에 대한 보다 상세한 얘기는 시간 나는 대로 바로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21평쯤 되는 완공이 눈앞인 나의 2번째 시골 집

평화를 원하시면 귀연하세요

“아뿔싸, 여보 이리 와봐요, 이거 어떻게 하지. 큰 일 났데” 6월 30일 이른 아침, 밭을 갈다가 못 볼 꼴을 보고야 말았다. 관리기 바퀴에 커다란 뱀이 말려져 있던 것이었다. 밭을 간지 거의 2시간 가까이 돼서야 이 같은 사실을 알아챘다.

밭을 갈기 시작한 시간은 이날 오전 6시 30분쯤이었다. 밭갈이를 시작한 지 30분도 못돼서였을 게다. 아주 작은 달걀만한 흰 알들이 서너 개 밭에서 튀어 나왔다. 속으로 “풀 속에 누에고치 같은 게 있었나” 무심하게 생각하고 그 뒤로도 한 시간 넘게 계속해 밭을 갈았다.

헌데 관리기 톱날 바퀴 사이에 풀 가지들과 폐비닐 등이 너무 많이 엉켜서 작업 효율이 다소 떨어지는 듯 했다. 그래서 그걸 빼내려고 관리기 스위치를 끄고 보니, 뱀이 바퀴에 3겹쯤으로 말려져 있었다.

한편으로 징그럽고, 또 한편으로 참혹하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소스라치게 놀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집에서 뛰어 나온 아이 엄마도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옆 밭에서 김을 매던 이웃 아주머니가 달려와 고추 지지대로 죽은 뱀을 들어내 골짜기에 버렸다.

뱀에게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뱀은 알을 배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대충 밭 가는 일을 끝내고 아침을 먹는데 토할 것만 같았다. 여간 해서 살생을 하지 않는 아이 엄마가 위로했다. “살의를 갖고 한 일은 아니니, 잊으세요.”

시골로 온전하게 삶터를 옮긴지 올해 말이면 만 9년이다. 언젠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지만, 내 경우 귀농도 귀촌도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물으면, “귀농했어요” 혹은 “귀촌이요”하고 대답하고 했지만, 속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귀연’하겠다는 생각을 확고히 한 것이 1993년 무렵이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귀농 귀촌 인구가 50만 명을 넘어섰다는 정부 통계자료 발표를 어제인가 뉴스를 통해 접했다. 귀농과 귀촌에 대한 정의는 없었지만, 말 그대로 귀농은 농사지으러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한 것이고, 귀촌은 촌으로 삶의 기반을 옮긴 것일 게다.

반면 귀연은 귀농 귀촌과는 달리 물리적인 측면보다 생활방식, 사고 등의 관점에서 ‘이도향농’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자연의 일부가 돼서 사는 것, 자연을 닮은 삶을 사는 것 등을 말한다. 귀농 귀촌 인구 중에도 당연히 귀연이 목표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또 귀연이더라도, 삶의 방식은 귀농일 수도 있고, 귀촌일 수도 있겠다.

알을 품은 뱀을 죽인 게 이중삼중으로 괴로운 건, 전혀 귀연스럽지 않은 행위인 탓이다. 농약이나 비료는 물론 가능하면 비닐 같은 것도 덜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풀과 전쟁’을 벌이면서 지난해부터 어쩔 수 없이 비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기계나 기계 작동에 불가피한 휘발유도 최소한도로만 쓰려 했다. 풀을 제어하기가 유달리 힘든 건, 무엇보다 제초제나 기계 사용을 껴려온 탓이었다. 헌데 굉음을 내는 관리기를 써서, 그 것도 생명을 품은 뱀을 죽였다? 입으로는 자연을 닮은 생활을 하겠다고 떠들면서, 기계를 이용해 무자비하게 목숨을 해한 꼴이니, 자책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농 귀촌이 이 시대의 한 흐름을 형성하면서 이런저런 논란 또한 적지 않다. 귀농 귀촌 인구 50만 돌파라는 뉴스를 전하는 인터넷 기사에 달린 엄청난 댓글도 그런 마찰음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댓글의 대부분은 귀농 귀촌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우려를 표하는 내용들이었다.

부정적 시각이나 우려 자체가 틀렸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또 개개인 처지에 따라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얘기들이기 때문이다.

귀농 귀촌에 대해서는 따로 할말이 없다. 오리지널 귀농 귀촌인 시각에서 나는 무늬만 귀농 귀촌인인 탓이다. 하지만 귀연은 쉽지 않다고 털어놔야 할 듯 하다. 아파트 숲과 오피스 빌딩에서 귀연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농촌 산촌 어촌이 보다 ‘귀연스런’ 삶을 살아가기 좋은 환경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농촌에서도 귀연스럽게 살아가려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살아 있다면 ‘해충’이라도 죽이지 않는 아이 엄마 때문에 우리 집은 곤충 농장과 비슷하다. 방 구석구석을 누비는 거미만도 한두 종류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여름철이면, 모기 쫓아내기는 더욱 어렵다.

오늘 아침처럼 애먼 생명을 끔찍하게 뺏는 일이 생기면 그 후유증이 적어도 사나흘은 간다. 귀연이고 뭐고 그냥 확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들어온 시골인데, 차마 그럴 수는 없고, 내 경우 이럴 때 위안으로 삼는 말이 있다. ‘세상 사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귀농 귀촌이 인생에 어떤 답을 가져다 주는 지는 모르겠다. 세상 어디 살아도 만만치 않다. 귀연했답시고 시골에 살면서도 똑같이 느낀다. 다만 나이 탓인지, 주변 환경이 변했는지는 몰라도, 시골로 귀연을 결행한 뒤 전에 없던 변화를 느끼고는 있다. 평화! 바로 평화로운 시간을 자주 갖는다는 점이다.

서울과 중소도시는 물론 미국의 대도시에서 살았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평화 말이다. 개인적으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도시에 살 때 가끔씩 행복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행복이라는 게 신기루 같은 거, 있다 사라지는 거였다는 말이다.

행복이라는 것과는 달리 평화는 그 자체로 마음을 목욕시키는 듯한 느낌을 주곤 한다. 행복감이라는 건 대체로 있다가 사라질 때 뒤끝이 좋지 않았다. 뭐랄까 신나게 기분내면서 놀이기구를 탔다가 내려왔을 때 느낌이랄까. 잘 표현하기 힘들지만, 올라갈 때는 좋았는데, 꼭 내려오더라는 것이다. 평화는 그러나 잔잔하게 제 자리에 있으면서도 뭔가를 고양시키는 기분, 그런 느낌을 남긴다.

약 10년 시골서 살아본 정도로 어줍잖게 귀농 귀촌에 대해 왈가왈부할 형편은 못 된다. 다만 평화를 꿈꾼다면 귀연들 하시라. 벌레와 새와 갖은 동물, 하늘과 물과 바람이 어느 순간인가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 아침 내 경우처럼 뜻하지 않은 좌절과 낙심 또한 동반될 수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겠다.

정현 나달과 꿈의 한판 승부벌인다

정현 선수가 바르셀로나 오픈에서 살아있는 전설 라파엘 나달과 마침내 맞붙게 됐다. 주초 오마이뉴스를 통해 8강전 대결 가능성을 점쳐 본바 있는데 실현된 것이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19847&CMPT_CD=SEARCH).

정현은 한국시간으로 28일 새벽, 8번 시드의 알렉산더 츠베레프를 말 그대로 6-1, 6-4로 일축했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엄중한 대통령 선거 국면만 아니라면, 한국의 열성 테니스 팬과 관계자들에게 이만한 뉴스는 흔치 않다.

정현과 나달의 8강전은 한마디로 한국 테니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세계 남자테니스협회(ATP)가 ‘공식’ 지목한 것처럼, 정현은 세계에서 열손가락에 안에 드는 젊은 선수, 즉 ‘차세대(NEXGEN)’ 주자이다. 나달은 더 이상의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테니스 역사상 최고 자리를 놓고 페더러를 넘보는, 적어도 수십 년 어쩌면 100년여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이다.

정현은 한국 랭킹 1위지만, 최근 1~2년 사이의 동향만 본다면 오히려 국내에서 저평가되고 있다. 세계 테니스 관계자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서 더 큰 주목을 받는 실정인 것이다. ATP 인터넷 홈페이지에 하루가 멀다 하고 정선수가 빈번한 뉴스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게 단적인 증거이다.

정현이 8강에서 나달과 맞서기까지는 우연이나 운이 따라준 것도 아니었다. 16강전에서 완파한 츠베레프는 정선수보다 1살 어린 19세로 “향후 수년 안에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이 유력한 실력을 갖췄다”는 전문가들의 이구동성 평가를 받고 있다. 그에 앞서 꺾은 필립 콜슈라이버는 페더러나 나달이 종종 ‘퀄리티 플레이어’라고 칭찬하는 수준급 기량을 갖춘 선수이다.

테니스계에서 퀄리티 플레이어란 기량 게임 감각 등이 세계 정상 선수와도 맞붙는데 부족함이 없는 선수를 뜻한다. 실제로 콜슈라이버는 흙 코트 대회에서 다수의 우승 경력이 있으며, 흙 코트 대회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전성기 기준으로 세계 랭킹 10위 안에 너끈하게 들 수 있는 선수이다.

정현의 이번 바르셀로나 오픈 선전은 어느 정도는 예견된 것이었다. 받아치기, 즉 리턴에 뛰어나고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대신 게임 운영 능력, 예측 등에서 좋은 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흙 코트는 하드 코트나 잔디 코트와는 다른 구장 특성으로 인해 이변이 속출하는 구장 표면으로 유명하다.

공이 느리고 바운스가 불규칙한 까닭에 정통적인 스윙 폼을 구사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승점을 올릴 수 있다. 정현 선수와 나달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스트로크 궤도나 자세가 비정통적이라는 것이다. 또 두 선수 모두 받아치기에 능하다.

수비가 좋은 선수들이 유리한 까닭에 흙 코트에서는 하위 랭킹이 상위 랭킹 선수를 꺾는 이른바 ‘업셋’(upset)이 빈번하다. 이번 바르셀로나 오픈 16강전 8경기 가운데 정현 선수가 츠베레프를 물리친 것을 비롯해 모두 5경기에서 업셋이 일어났다. 업셋을 피하고 살아 남은 선수는 나달을 필두로 현 세계 랭킹 1위 앤디 머레이, 20세 초반 그룹 선수 중 가장 랭킹이 높은 도미닉 팀 등 3명에 불과했다.

정현의 4강 즉 준결승 진출은 객관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나달은 테니스 역사상 이론의 여지가 없는 ‘흙 코트의 제왕’인데다, 올 들어 전성기 기량을 회복하는 등 최소한 흙 코트에서 그를 꺾어볼 수 있는 선수는 현재 세계적으로 한두 명이 있을까 말까 한 상태이다.

그러나 정현이 나달을 이기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론 정현의 승리 확률이 극단적으로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나달은 올 들어 호주 오픈을 시작으로 가장 강행군하고 있는 선수이다. 지난 주말 몬테 카를로 마스터스 대회 우승, 또 그 이전 마이애미 오픈 결승 진출 등 지난 3개월 남짓 기간 동안 톱 선수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게임을 소화했다.

나달이 그럴 확률은 떨어지지만 다음 달 말 열리는 프렌치 오픈까지 빡빡한 일정을 감안해 정현을 상대로 공격을 서두른다면, 정현은 한 세트 정도는 빼앗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흙 코트는 점수를 얻기 위해 강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강력한 서비스 한두 방이나 전광석화와 같은 포핸드 스트로크로 스코어를 올리기가 쉽지 않다. 상대 코트로 공을 한 번 더 넘기는, 이른바 ‘원 모어’(one more) 방어력을 보이는 쪽에 승산이 따르곤 한다.

승리를 기대하기 쉽지 않지만, 정현은 이번 나달과의 8강 시합 그 자체를 통해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경기보다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게임 호흡을 제대로 읽고, 잃을 게 없다는 느긋한 자세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지더라도 선전의 박수를 받을 터이다.

나달과의 8강전은 정현의 테니스 인생에 커다란 하나의 이정표로 부족함이 없다. 한때 세계 랭킹 50위 안에 반짝 진입했다가 거듭된 추락으로 100위 권 밖으로 벗어난 게 바로 엊그제 일이다. 랭킹을 유지하고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서, 예를 들면 흙 코트에 시즌 중 어느 정도 자원을 배분해야 할지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얘기이다.

정현과 나달의 8강전은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한국시간으로 28일 자정을 전후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달과 정현이 맞붙을 수 있을까

정현과 나달의 매치가 성사될까? 한국의 테니스 팬들이라면, 저녁 시간 대선 토론방송을 제쳐두고 두 사람의 경기를 시청할지도 모른다.

정현 선수가 24일(한국시각) 바르셀로나 오픈 예선을 통과,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25일 본선에서 맞불게 될 첫 상대는 공교롭게도 지난 번 데이비스 컵 국가대항전의 상대였던 우즈베키스탄의 데니스 이스토민 선수다.

정현이 이스토민을 꺾고 2차례 더 이긴다면 8강전에서 나달과 맞붙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시드 배정자로서 첫 라운드를 부전승으로 건너뛰고 두 번째 라운드부터 치르는 나달은 이변이 없는 한 8강 진출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나달은 페더러와 함께 살아있는 테니스의 역사다. 인기나 수입 그리고 승패 전적에서 페더러에 약간 못 미치기는 하지만, 나달은 최소한 흙(클레이) 코트에서만큼 페더러도 넘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테니스의 전설로 남을 선수다.

정현이 그것도 최근 부활한 나달과 흙 코트에서 시합을 할 수 있다면, 한국 테니스 팬에게는 생애에 보기 드문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승패를 떠나 한국 테니스의 한 페이지를 작성할 만한 사건인 것이다.

올해 테니스 판도를 쥐락펴락 하는 선수는 두 사람, 즉 페더러와 나달이다. 페더러는 23일 끝난 몬테 카를로 대회 이전까지 가장 큰 올해 3개 대회 우승을 모조리 차지했다. 나달은 유럽의 흙 코트 시즌 첫 대회인 몬테 카를로 마스터스에서 10회 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냈다.

나달은 동시에 이날 클레이 코트 대회 통산 50회 우승을 달성함으로써 그간 최다였던 49회 기록을 갈아치웠다. 49회 우승은 나달 이전에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역시 살아있는 테니스 전설인 길예모 빌라스(Guillermo Vilas, 아르헨티나, 64)가 1983년 작성한 것이다. 나달의 이번 몬테 카를로 대회 우승은 그러니 거의 35년만의 새 기록인 셈이다.

정현은 아시아권에서 유일하게 세계 남자테니스협회(ATP) 기준으로 차세대 주자(NEXGEN)군에 끼어있다. 미래 테니스를 짊어질 유망주로 ‘공식’ 지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 정현의 올 대회 흙 코트 성적은 1승 1패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최근 많이 향상되기는 했지만, 정현은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헌데 흙 코트는 에이스가 잘 나오지 않는 등 서비스의 영향이 적은 편이다. 경기를 풀어가는 감각, 시의적절한 전략 변화 등이 보다 중요하다.

흙 코트가 하드 코트에 비해 더 많은 이변이 만들어내는 건, 그만큼 변수가 다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현의 테니스 감각은 차세대 주자 군에서도 우수한 편에 속한다. 흙 코트 대회에서 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조건이라는 뜻이다. 다만 상대적인 경험 부족과 하드 코트보다 랠리가 긴 탓에 체력소모가 많은 점 등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흙 코트 대회는 묘기 샷이 속출하는 데다, 선수로서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면이 있다. 변수가 많은 대통령 선거전이 보다 흥미진진하듯, 흙 코트 대회는 서브 몇 방으로 종종 판세가 결정되는 하드코트 대회와 달리 지켜보는 재미가 큰 편이다.

정현이 나달과 붙는 ‘역사적 기회’를 갖으려면, 25일 치르게 될 첫 경기에서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 유명 선수들도 인정하듯, 흙 코트 대회는 이른바 모멘텀이 경기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우리 말로는 일종의 ‘흐름’ 혹은 ‘전기’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모멘텀은 경기에서 리듬과 직결된다. 나달이 흙 코트에서 강한 건 인내심과 함께 상대의 리듬을 깨뜨리는 데 천부적인 재질을 가진 탓이기도 하다.

나달은 최근 막을 내린 몬테 카를로 대회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올 시즌 흙 코트의 제왕으로의 복귀가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다. 그 자신의 기량이 전성기 시절로 회복됐을 뿐만 아니라, 흙코트에서 가장 강력한 나달의 라이벌인 노박 조코비치가 부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페더러는 유럽 클레이 시즌의 피날레이기도 한 프렌치 오픈 한 대회에만 출전하기로 공언한 상태이다.

그런가 하면 랭킹 1위인 앤디 머레이는 “올해 흙 코트에서만큼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공언했으나, 몬테 카를로 대회에서 랭킹이 한 참 아래인 선수에게 패하는 등 아직 이렇다 할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시간으로 24일 첫 경기가 시작된 바르셀로나 오픈은 우승자에게 500포인트가 주어지는 마스터스대회 다음으로 급이 높은 대회다. 나달은 물론이고 세계랭킹 1위 머레이를 비롯해 10위권 강자도 여럿 출전한다.

“박근혜씨 지지표 어디 안가유”

“지난 선거에서 박근혜씨 지지했던 사람들 이번에는 어떻게 투표할 거 같아요?”

요즘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듣는 호기심 섞인 질문들이다.

“그거 알면, 제가 이렇게 촌구석에 박혀 있겠습니까? 한 자리 깔았어도 크게 깔았지.”

시골 사는 촌부도 비교적 자주 접하는 궁금증이고 질문이니, 하물며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칭타칭 정치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을 법하다.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들을 두루 살펴보지 않은 탓이 크겠지만, 박근혜씨를 지지했던 그룹이 어떤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줄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려는 의도의 설문 같은 걸 보지 못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과학은 여론조사와 관계없이 그 표가 어디로 갈지를 대략은 알고 있다. 왜? 우리 사회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과반일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정치는 과학’인 까닭이다.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사람들의 정치성향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은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선거판에 유전자를 들이밀면 황당해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 쯤 되면, 즉 정치학이나 사회학 혹은 통계학이나 조사방법론, 역사, 인문지리 등을 얘기하면서 한국 정치와 선거, 여론조사 결과 등을 논하는 것은 하등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헌데 정치판에 유전학이라?

정치학과 유전학이 멀게 느껴질 수도 있으므로, 좀 에둘러서 접근해 보자. 한국 사람이 프랑스 사람, 혹은 영국인이 일본인을 보면 최소한 서로가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라는 걸 안다. 딱 보면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생김새는 무엇이 결정할까? 두말 하면 잔소리, 유전자이다.

그렇다면, 현대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는 생김새, 체형 등만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 생물일까? 정의하기가 다소 애매모호하지만 이른바 ‘심성’,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개개인의 특질도 유전자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농후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집안에서 ‘누구누구는 외탁*해서, 혹은 누구누구는 제 아버지를 닮아서’라는 등의 얘기를 한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생김새나 체질, 성질 따위가 외가 쪽을 닮음)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살아있는 유전자 실험의 피험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일란성 쌍둥이는 생김새뿐만 아니라 성격도 타인에 비하면 서로 훨씬 닮았다.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같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성격이 비슷한 거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이뤄진 방대한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 따르면 젖먹이 때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된 쌍둥이도 성향이 비슷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치는 시대상황이 주무르는 듯하지만, 정치의 주체인 주권자 개개인의 정치 성향이 사실 한 집단 혹은 공동체의 정치 지형을 결정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시민 구성원들 가운데 보수적인 성향이 많으면, 그 사회의 정치는 보수 우위이고 진보적 성향의 구성원이 많다면 진보가 주도하는 정치 지형이 탄생할 수 밖에 없다.

유전학에 문외한이 정치분석가들 가운데도 정치 성향을 일종의 ‘기질’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주장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사람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뀌지 않는 것은 바로 기질이다. 기질이란 문자 그대로 타고난 ‘기품과 성질’인데, 타고났다는 건 유전자를 그리 받았다고 해석해도 그다지 틀릴 게 없다.

과학적으로 정치학과 유전의 관계를 구명한 논문의 예를 들자면 한둘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 연구팀이 500명 이상의 쌍둥이에 대해 투표 성향을 조사한 결과, 투표 성향의 차이는 최소 60%가 유전자의 영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달리 말해, 환경이나 상황 변화 등 기타 요소를 다 합쳐봐야 40%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는 최근 상당히 진척돼 구체적으로 특정 유전자를 지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간의 다른 특질도 그렇지만 정치 같은 고도로 복잡한 인간 특유의 행동이나 성향은 한두 유전자보다는 여러 유전자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정치 유전자’ 가운데 최근 학계의 주목을 받은 건 ‘DRD4’라는 유전자이다.

싱가포르 대학의 전문가들이 조사한 DRD4와 보수 혹은 진보적 성향간의 관계에 따르면, 이 유전자의 특정부분이 얼마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는가가 보수 혹은 진보의 정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 조사에서 스스로 ‘매우 보수적’이라고 자평하는 사람들에게서는 DRD4의 특정부위가 4번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 62.5%에 달했다. 반면 ‘매우 진보적’이라고 답한 층에서는 4번 반복되는 예가 37.9%에 그쳤다.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부위는 앞으로도 연구에 따라 계속 더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치 유전자’가 구체적으로 더 지목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유권자 개개인의 기질이나 성향이 인생 전반을 통해 바뀔 확률은 안 바뀔 확률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은 자명하다. 타고난 성격이, 예를 들면 급한 성질이 교육이나 훈련에 의해 느긋한 성격으로 바뀌고, 예민한 사람이 어느날인가부터 무뎌지는 등의 변화는 쉽게 초래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인 탓이다.

정치 성향은 일종의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흔히 말하듯 극우에서 우, 중도, 좌, 극좌와 같은 식으로 연속적인 경향을 보인다. 우측이든 좌측이든 이게 기질이라면 변화를 기대하는 건 무망한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중도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얼추 말해, 중도 보수에서 중도 진보에 이르는 그룹들은 이른바 진보와 보수 후보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씨를 지지한 사람들은 어떤 계층일까? 잘해야 중도부터 강경보수 혹은 수구층에 이르는 유권자들이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중에서 중도 혹은 중도보수를 제외하곤 진보쪽 후보에게는 이번에도 표를 주지 않을 확률이 대단이 높다. 이들 즉 보수와 강경보수 수구 성향의 유권자들은 박근혜씨의 사례를 겪고 나서도 또 박근혜씨와 비슷한 부류에게 표를 줄 수밖에 없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박근혜씨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번 대선의 후보는 예를 들면, 70% 득표 같은 압도적 승리는 아예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 한때 적어도 80% 이상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촛불 민심 같은 게 선거판에 그대로 투영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다자구도든, 양자구도든 박근혜씨와 대척점의 후보가 60% 안팎을 거둬들인다면 ‘겁나게’ 많은 득표를 한 것이고, 절반만 넘겨도 선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씨를 지지한 사람 가운데 그와 대척점에 있는 후보에게 넘어올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유권자들이 막연히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전자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도 민주화 확산과 정착에 일조하지 않을까?

대선 다음으로 ‘재미있는’ 테니스

“올 여름 까지 흥미만점 보장돼 있어요”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머레이로 상징되는 테니스의 황금기, 그 가운데서도 2017년 올 한해는 그 흥미진진함에 있어서 영원히 기록으로 남을 듯하다. 단순히 테니스를 넘어서 스포츠 역사상 흔치 않은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고 ‘빈발’하는 탓이다.

연간 70개에 육박하는 세계 남자 테니스 대회 중 4월 7일 현재 20개 토너먼트가 끝난 시점의 기록만으로도 올 한해는 ‘파란’과 ‘놀라움’이란 단어들로 수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호주오픈을 비롯해 4월초 막을 내린 마이애미 오픈까지 3개의 가장 큰 대회를, 우리 나이로 37세인 페더러가 부상 복귀 후 싹쓸이 한 탓이다.

그러나 팬들 입장에서 흥미만점인 파란의 연속은 페더러의 눈부신 귀환으로 끝이 아니다. 4월 17일 개막하는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대회를 필두로 6월 11일 끝나는 프랑스 오픈까지 ‘이변’의 연속은 예약이 된 거나 다름없다. 이변과 파란은 또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여름의 한 복판인 7월 16일 폐막될 윔블던까지 이어질 확률이 지극히 높다.

열흘 안팎으로 다가 온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대회 시작은 이른바 ‘유로 클레이'(Euro clay) 시즌의 출발점이다. 유로 클레이란 말 그대로 유럽의 흙 코트에서 열리는 일련의 대회를 총칭한다. 흙 코트는 테니스 역사상 전무했고, 아마도 후무의 가능성 또한 농후한 나달의 오늘을 있게 한 구장이다.

유로 클레이 시즌은 일단 프랑스 오픈에서 종지부를 찍는데, 몬테 카를로 마스터스를 필두로 프랑스 오픈 전까지 마드리드 오픈, 이탈리아 오픈 등 마스터스 대회가 3개나 열린다. 마스터스 대회는 우승 포인트가 1000점으로 2000점인 그랜드슬램 다음 급의 대회이다. 보통은 테니스 강자들이 빠짐없이 마스터스 대회에 참가해 우승컵을 휩쓸어 간다.

연간 열리는 마스터스 대회는 모두 9개인데, 달포 남짓한 유로 클레이 시즌 동안 무려 3개가 집중된 것이다. 올해 유독 유로 클레이 시즌이 주목되는 건, 거듭된 부상으로 지난 2~3년간 최악의 시즌을 보낸 나달이 전성기 기량을 급속히 찾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올해 나달의 부활은 태양처럼 홀로 빛난 페더러의 그늘에 가려져 덜 주목을 받았을 뿐, 그 또한 극적이었다. 나달은 올들어 지금까지 열린 3개의 큰 대회, 즉 호주오픈(결승), 인디언 웰스 마스터스(16강전), 마이애미 마스터스(결승)에서 페더러 다음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뒀으나 매번 페더러에게 패해 우승 길이 막혔었다.

“원하는 수준에 다가가고 있다. 올 클레이 시즌에 그 어느 때보다 기대를 걸고 있다.” 나달이 지난 주 막을 내린 마이애미 오픈을 뒤로 하며 남긴 말에서 알 수 있듯 올해 유로 클레이 대회는 지난 4~5년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짐작된다.

나달이 흙 코트에서 전성기 기량에 근접하는 대신, 현 랭킹 1,2위인 머레이와 조코비치는 둘다 팔꿈치 부상 등으로 경기력이 2015~2016년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이다. 여기에 또 페더러가 프랑스 오픈을 제외하고는 유로 클레이 대회들에 일체 출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함으로써 일부 전문가들은 나달이 유로 클레이 시즌을 호령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4~5년 나달의 부상이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흙 코트의 ‘주인’은 조코비치였다. 또 빅5로 쳐주는 스탠 바브링카 역시 흙 코트에 강한 면모를 보여온 탓에 일주일이 멀다 하고 한 달 반 사이에 거듭되는 10개 가량의 흙 코트 대회를 나달이 석권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큰 대회인 마스터스 3개 토너먼트를 나달이 휩쓸지 여부가 일차적인 관전 포인트이다. 나달이 몬테-카를로, 마드리드, 이탈리아 등 3개 대회에서 2개 이상 우승컵을 수집한다면 유로 클레이의 절정인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 확률도 그만큼 높다.

흙 코트에서는 매번 나달에 막혔지만, 여전히 흙 코트에서도 전성기 강자였던 페더러가 올해 유일하게 참가하는 유로 클레이 흙 코트 대회인 프랑스 오픈에서 어떤 성적일 보일지도 주목된다. 페더러가 기술적으로 흙 코트에서는 나달에 비해 밀리지만, 나달은 유로 클레이 시즌을 계속 뛸 계획인데 반해, 페더러는 지난주부터 휴식에 들어갔고, 프랑스 오픈에서야 재개의 라켓을 거머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만큼 싱싱한 상태에서 토너먼트에 임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페더러는 그의 기술, 신체적 특성에 가장 적합한 잔디 시즌에 온힘을 쏟아 부을 계획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페더러는 전성기 시절 거의 매년 복수의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만, 2010년 호주 오픈 우승을 끝으로 그랜드슬램 대회 ‘가뭄’을 겪어왔다. 올해 호주 오픈 우승으로 거듭나기까지 그의 지난 7년 침체기 가운데 유일한 그랜드슬램 우승은 2012년 윔블던이었고, 전문가들 또한 이구동성으로 페더러는 잔디 코트인 윔블던에서 우승 확률이 가장 높다고 진단한 바 있다.

세계 스포츠계에서도 파란과 이변으로는 단연 올 들어 최고의 주목을 받고 있는 테니스, 그 테니스가 최소한 올 여름까지는 흥행을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팬들이라면 그 어느 시즌보다 즐거울 듯하다.